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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자 천관율 -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2,061 20
2024.12.05 20:25
2,061 20

 

계엄령을 '해프닝'으로 축소하고 대통령 탄핵 시도를 어떻게든 대통령에 대한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정쟁으로 왜곡하려는 누구누구들에

묘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이 글이 그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짚어줬어

덬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가져옴. 일부 문단 나누기는 가독성을 위해 내가 띄어쓰기한 거야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 천관율

 

 

1.

정치에는 시간 차원이 두 개 있다. 일상의 시간, 그리고 헌정의 시간. 지금은 헌정의 시간이다.

일상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정치란, 누가 예산을 얼마 깎았고, 무슨무슨 법을 만들고 거부권을 쓰고, 다음 대선을 누가 이길 것 같고, 이런 것들이다. 일상의 정치를 정의하는 한 방법은, '공화국이 안전할 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인 대선도 일상의 정치다. 헌정체제 안에서 작동하니까.

 

우리가 12월 3일 이후로 진입한 정치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계엄이 헌법에 정해진 절차라는 이유로, 계엄도 일상의 시간에 속하는 것처럼 취급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1) 지금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라는 걸 입증해야 하고, 동시에 2) 그런 상황에서조차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국회 군 투입을 헌법 안에서 설명해야 한다. 상식을 가진 공화국 시민이라면 둘 다 불가능하다.

 

공화국의 작동원리 그 자체가 위협받을 때, 정치는 헌정의 시간으로 차원 이동을 한다. 이 시간 차원에서 정치의 전선이란 딱 하나다.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 vs 공화국의 적. 나머지는 전부 허튼소리다.

일상의 시간일 때, 정치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들을 나는 비판한다. 일상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명한 선악구도와 양자택일의 언어는 정치 그 자체를 해친다.

헌정의 시간일 때, 정치에서 양자택일을 회피하는 이들을 나는 경멸한다. 여기는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가 되거나 그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2.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여당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의 폭거 때문에 계엄을 선택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감액예산, 탄핵남발 등등 그가 말하는 '폭거'를 전부 인정한다 쳐도, 그것은 일상의 시간에 속하는 정치다. 그리고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한 순간, 이것으로 정치는 헌정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여기는 연속선이 아니라 단절이 있다.

윤석열은 이 둘을 뒤섞었다. 일상의 시간에서 일어난 일로 헌정의 시간을 연 잘못을 설명하려 든다.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다음 상황을 가정해 보면 된다. 12월 3일 쿠데타가 성공해 계엄군이 권한을 장악했다면, 윤석열은 "야당의 폭거에 충분한 경고를 보냈으니 계엄을 해제하겠다. 이제 다시 제대로 잘 해 보자"라고 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 자신도 일상의 시간과 헌정의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고, 성공했다면 초법적 권력을 마음껏 썼을 것이다. 실패했으니 모르는 척 하는 것 뿐이다.

국민의힘도 이 둘을 뒤섞는다. 그들은 계엄이라는 사건이 마치 일상의 시간에 속한 '좀 과한 정치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적절한 유감표명으로 마무리를 하려 든다.

공화국 방어 국면을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바꿔치기하기. 이것이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가겠다고 선언한 길이다.

 

 

3.

헌정의 시간을 마치 일상의 시간인 것처럼 정치가들이 뒤섞을 때,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위기가 온다.

우리는 한 예측불가한 인격에 의해 헌법이 언제든 정지되고 군대가 국가를 통치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것이 12월 3일 위기다. 대체로 훈련된 정치가들이 운영할 때 위험하지 않은 비상장치(계엄)라 해도, 그 버튼을 울컥하는 철부지가 쥘 때는 어처구니 없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

우리가 12월 3일에 확인한 것처럼, 대통령은 공화국의 적이다. 대통령은 공화국을 지킬 헌법적 의무를 지므로, 이 문장은 자체로 모순이다. 따라서 해소해야 한다.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대통령'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거나, '공화국'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거나.

전자에 복무하는 이들은 공화국을 방어하는 자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곧 후자의 해법, '공화국'을 사실이 아니도록 만들기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러니 공화국의 적이다. 이 전선 외에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정치가 의미를 잃는 곳, 그것이 헌정의 시간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위기란 이 간명하고 선명한 전선을 미묘하고 애매모호하게 바꿔치기하는 위기다. 헌정의 시간을 마치 일상의 시간인양 바꿔치기하는 위기다. 이 바꿔치기가 된다는 것은, 공화국 방어 전쟁이 무승부와 교착상태가 병가지상사인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계엄의 의미를 바꿔치기하려 든다. '공화국의 헌정적 위기'에서 '대통령의 좀 거친 카드 중 하나'로 바꿔치기하려 든다. 이것은 무엇이 공화국의 위기인가라는 합의를 파괴해 버리는 시도다. 헌법 그 자체에 대한 공격보다 어떤 의미로 더 위험하다.

심지어 이 시도는 계엄보다 쉽다. 군이 국회를 장악하지 않아도 되고, 내란죄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많은 국민을 설득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당 의원의 이탈표를 8명 아래로만 묶고 버티면 이 시도는 일단 성공한다. 대통령은 탄핵되지 않고, 공화국 방어 전쟁은 일상적 정쟁 국면으로 점차 전환될 것이다. 그 상태로 대통령 임기가 2년도 더 남았다. 다음 계엄을 하기에도 국지전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것은 우발적이고 예측불가한 한 인격이 일으킨 12월 3일 위기를 훨씬 뛰어넘는 위기다. 12월 3일 위기가 공화국 수호의 열정을 광범위하게 불러 일으켰다면, 다가오는 바꿔치기 위기는 공화국 수호의 열정 그 자체를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끝내 뭉개진 일상으로 되돌리려는,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시도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쿠데타로 볼 수 있다. 첫 쿠데타가 헌법을 직접 거칠게 공격했다면, 두 번째 쿠데타는 공화국 수호의 열정을 우회해서 미묘하게 공격한다.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공화국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할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야말로 공화국을 죽음으로 모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바꿔치기 위기의 기획자들은, 12월 3일의 돈키호테보다 더 위험한 방식으로 공화국을 위협한다.

 

 

출처: 시사인 천관율 기자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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