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x.com/hanitweet/status/1864265622701658183?s=46
가디언처럼 엑스를 떠나지 않는 이유 [뉴스룸에서]
기사 전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0964.html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더는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엑스(X·옛 트위터)에 콘텐츠를 올리지 않겠다고 지난달 13일(현지시각) 밝혔습니다.
80개가 넘는 공식 계정이 보유한 총 2700만명의 팔로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엑스를 탈출한 언론사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엔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와 피비에스(PBS)가 엑스 이용을 중단했습니다.
2022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사들인 엑스가 마음대로 ‘국영 미디어’라는 딱지를 붙여버렸다는 이유였습니다.
머스크의 엑스에 넘쳐나는 극우 음모론과 성·인종 차별 콘텐츠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래 고민하던 가디언이 철수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미국 대선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인 머스크가 엑스를 선거운동 도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가 정부효율부 수장에 머스크를 지명한 직후, 가디언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엑스 보이콧(거부)을 발표했습니다.
가디언은 “엑스가 유해한 미디어 플랫폼이고, 머스크가 정치적 담론 형성에 엑스의 영향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미 대선 캠페인이 확인시켜줬다”며 “플랫폼에 남아 있는 단점이 이점보다 더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다음 날 스페인 일간지 라방가르디아도 엑스 철수를 공식화했습니다.
‘엑스오더스’(X-odus·엑스와 대탈출을 뜻하는 엑소더스의 합성어)에 함께하는 국내 언론도 있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지난달 15일 “우리가 이곳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다는 건 이곳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차별, 폭력을 방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엑스에서의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알렸습니다.
한겨레의 공식 에스엔에스를 운영하는 저희 부서도 고민했습니다. 머스크의 소유물처럼 돼버린 엑스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논의 끝에 저희는 남기로 했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아직은 엑스의 이점이 단점보다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단 엑스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최근 3개월간 한겨레 엑스 공식 계정(팔로어 56만명)에 올라온 게시글을 인용(리트위트)하거나, 게시물에 ‘마음에 들어요’ 표시를 한 이용자의 88%는 여성이었습니다.
연령별로는, 같은 방식으로 한겨레와 소통한 이용자의 70%가 만 18~34살이었습니다.
팔로어 31만명 중 남성 비율이 60%, 만 18~34살 비율이 35%인 한겨레 공식 페이스북 계정과 비교해봐도, 엑스의 이용자 구성은 특별합니다.
저희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2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24살 후기청소년은 성별 상관없이 에스엔에스 중 인스타그램을 가장 많이 썼지만, 엑스와 페이스북만 놓고 보면 이용 패턴이 달랐습니다.
진보·여성은 엑스를, 보수·남성은 페이스북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엑스가 한글을 지원한 2011년부터 여성들이 엑스에서 고유의 인용 기능을 활용해 소수의 목소리를 확산시켜온 문화가 자리 잡은 결과로 보입니다.
그 뒤 중장년 남성 우위의 한국 사회에서 2030 여성의 생각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최대 플랫폼은 언제나 엑스였습니다.
실제 저희가 지난 1년간 엑스를 운영해보니,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 젠더 폭력, 퀴어문화축제, 임신중지처럼 젠더나 소수자 이슈를 다룬 기사가 가장 많이 읽혔습니다.
스포츠와 미담 기사가 선호되는 페이스북과는 기사 소비 양상이 다릅니다.
특히 엑스에선 한겨레 기사를 두고 이용자들 사이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저희에겐 2030 여성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기회가 되곤 합니다.
엑스가 알고리즘을 조작한 건지 머스크의 게시글이 한국 이용자들에게도 자주 노출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엑스를 버리는 대신 정화하려고 노력하는 이용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계정에 꾸준히 ‘좋아요’를 누르거나 게시글을 인용해 알고리즘을 바꿔보려는 식입니다.
그런 이용자들이 버티는 한 저희도 엑스에 남겠습니다.
물론 엑스가 더 오염되지 않는지 잘 살피고, 다른 대안적인 플랫폼도 찾겠습니다.
그러다가 이용자들이 더는 못 참겠다며 ‘우리와 손잡고 함께 떠나자’고 할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엑스에서 철수하겠습니다.
(트위터 인용 부분은 볼드처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