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10,004 27
2024.12.04 08:27
10,004 27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 고 싶다,

꿈 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 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 들 속에.

다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 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이름만 걸어놓고 얼굴도 한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서였다이.

그 군 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

네 피가 아직 안말랐는디.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 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처어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 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QKBHcc
한강 <소년이 온다>

목록 스크랩 (0)
댓글 2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주지훈×정유미 tvN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석지원×윤지원 커플명 짓기 이벤트 194 11.29 79,493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4,003,53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791,13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140,716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7,514,76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5 21.08.23 5,436,26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1 20.09.29 4,398,29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59 20.05.17 4,983,90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3 20.04.30 5,446,590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225,94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64718 기사/뉴스 尹 비상계엄 선포, 지상파 특보 시청률 총합 12.5%…MBC 6.8% 최고 5 21:39 487
2564717 기사/뉴스 尹 비상계엄에 불쾌한 美, 한미 핵우산 회의도 취소했다 25 21:37 1,493
2564716 이슈 7년 동안 백수였던 디씨인의 취업 3개월 후기.jpg 6 21:37 2,209
2564715 이슈 [특집 100분토론/LIVE] 45년만의 계엄...'탄핵' 급물살 (1078회) 1 21:37 495
2564714 기사/뉴스 [단독] 경찰, '尹 퇴진' 촛불집회서 시민 폭행 여성 입건 7 21:37 2,348
2564713 이슈 한겨레가 엑스(구 트위터)를 떠나지 않는 이유 21:36 1,318
2564712 유머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의 작업실 공개 1 21:36 800
2564711 이슈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성명서 3 21:36 1,460
2564710 유머 ??? : 딱복 그냥 단맛나는무잖아 그거.twt 13 21:35 1,630
2564709 이슈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긴급 성명서] 국민을 괴롭히는 윤석열은 즉각 물러나라! 5 21:35 564
2564708 기사/뉴스 민주당 "尹 더 늦기 전에 내려오라"…탄핵 추진 전 경고 3 21:35 638
2564707 기사/뉴스 [속보] 美국무 "韓민주주의, 가장 강력한 성공사례…계엄해제 환영" 66 21:34 4,530
2564706 이슈 긴박했던 6시간, 내가 총구 앞에 선 이유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안귀령 BBC코리아 인터뷰) 7 21:34 1,376
2564705 유머 친구들 근황 얘기에 살짝 엄숙해진 장도연과 투어스.jpg 3 21:34 1,602
2564704 이슈 FNS 가요제 에스파 - 슈퍼노바 무대 17 21:33 1,575
2564703 이슈 2024 애플뮤직 글로벌 연간차트에 들어간 케이팝 목록 6 21:33 686
2564702 이슈 尹, 심야 계엄선포 직후 용산 '지하벙커'서 지휘 254 21:32 14,550
2564701 기사/뉴스 황가람 ‘나는 반딧불’ 노래방 터졌다···금영차트 1위 18 21:32 829
2564700 이슈 바로 카인의 대답 입니다. 21:32 458
2564699 기사/뉴스 한동훈 "계엄군이 체포하려 했다" vs 尹 "포고령 위반했잖나" 46 21:32 3,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