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 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 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 들 속에.
다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이름만 걸어놓고 얼굴도 한번 안 비쳤던 유족회에 처음 나간 것은,
부회장이란 엄마가 돌린 전화를 받고서였다이.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
네 피가 아직 안말랐는디.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처어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 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한강 <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