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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시장에 모인 사람들 대통령에 열광, '동그란 네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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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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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고속도로 나들목에서부터 형광색 점퍼를 입은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처음엔 국가의 재정 상황이 어렵다더니 대낮부터 음주 단속 중인가 싶었다. 그런데,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경찰의 수는 늘어났고, 시내의 간선 도로는 물론, 골목길 어귀마다 경찰이 수문장처럼 길목을 막아섰다.

지난 월요일(2일), 딸아이가 지원한 대학의 면접 고사가 있어 충남 공주를 찾았다. 대학에 가자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를 관통해야 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지났는데도 도로 곳곳은 번잡했고, 교차로마다 경찰이 수신호를 하며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분명 지방의 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국민의힘 지역위원장 명의의 것부터 시장 상인회와 특정 사단법인 이름을 적은 현수막까지, 내용은 같아도 내건 단체는 각양각색이었다. 와중에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한 산성 시장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윤 대통령이 당일 금강 변 고마 아트 센터에서 '다시 뛰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활력 넘치는 골목상권'이라는 주제로 민생 토론회를 연다는 걸 그제야 뉴스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른다는 거다. 시장 주변엔 직접 대통령의 얼굴을 보려는 이들로 일찌감치 장사진을 쳤다.


"여러분들 저 믿으시지요?" "네"

오후 3시 20분. 아이를 고사장에 내려주고 잠시 시장의 인파 속으로 끼어들었다. 이곳 산성 시장의 명물인 떡도 사고, 대통령에 대한 공주 시민들의 분위기도 살필 겸 북새통인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이미 가려던 떡집은 문이 닫힌 채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된 상태였는데, 짐작하건대 대통령의 동선에 이곳이 포함된 모양이었다.

참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산성은 인절미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인조 반정 직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는 이곳으로 급히 피신했다. 입맛조차 잃은 인조에게 인근에 살던 임씨 성을 가진 이가 떡을 진상했는데, 이를 인조가 최고의 맛(절미)이라며 상찬한 뒤 '임절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임절미'는 발음하기 편하게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모든 경찰이 동원된 듯했다. 시장엔 제복을 입고 경광봉을 든 경찰의 수도 많았지만, 손에 무전기를 쥐고 있거나 귀에 리시버를 꽂은 남녀 사복 경찰로 가득했다. 시장 건물 옥상마다 경찰이 스나이퍼인 양 서서 주변을 내려다 보았고,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은 바리케이드를 방패 삼아 줄지어 서 있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하기 한 시간 전부터 시장 어귀는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시장은 물론, 시내 곳곳에 환영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 서부원

▲  형광색 점퍼를 입은 경찰 외에도 사복 경찰들이 도로변과 골목 입구, 건물 옥상 등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 서부원

오후 4시. 산성 시장을 좌우로 관통하는 중앙 도로가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미 차량은 통제됐고, 시장 내 주차장의 차량도 드나들 수 없게 됐다. 육중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든 기자들과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매단 유튜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걸 보니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거의 도착한 모양이었다. 덩달아 교통경찰의 호각 소리도 커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 다들 몸을 움츠렸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파 중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통령을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만난 듯 서로 반갑게 악수하며 안부를 물었다. 대통령 부친의 고향이라는 인연을 강조하는가 하면, 임기 중 몇 번째 방문인지를 따져가며 다들 한껏 고무된 얼굴이었다.

그렇게 왁자지껄 기다린 지 30분이 넘어서야 대통령을 태운 검은색 차량이 반대편 도로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경호원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와 대통령의 동선에 늘어섰다. 급기야 인파 속에서 누군가 "윤석열"과 "사랑합니다"를 연호하기 시작했고, 메아리처럼 주위로 퍼져 나갔다.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올려 휘저으며 환호성에 화답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시장 어귀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윤석열", "사랑합니다" 등을 연호했고 대통령은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 서부원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기 바빴다. 모두가 위로 팔을 뻗어 올린 통에 대통령이 '스마트폰 장벽'에 에워싸인 형국이 됐다. 환호하는 인파 속에 대통령은 인기를 실감했다는 듯 내내 상기된 표정이었고, 잠시 뒤 대통령의 육성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여러분들 저 믿으시지요?"

대통령이 시장 내 라디오 방송국 부스에 들러 마이크 앞에 앉은 모양이었다. 시장 상인을 향해 "여러분들을 언제나 성원하고 응원하겠다"는 격려의 말 뒤에 이어진 돌발적인 질문이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네"라는 환호성이 들렸다. 부스까지 뒤따라간 이들뿐만 아니라 시장 건물 밖 길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까지도 이구동성 외쳤다.

▲ 공주산성시장 라디오방송국 방문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충남 공주산성시장 내 공지와 안내 등을 위한 라디오방송국에서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의 인식은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다

오후 5시가 갓 넘은 시간. 금세 사위는 어두워졌고, 대통령은 30분 남짓의 방문을 마치고 시장을 떠났다. 추위에 떨며 한 시간 넘도록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던 인파가 불과 몇 분 만에 썰물처럼 시장을 빠져나갔다. 그 많던 경찰도 도로 곳곳에 세워둔 러버콘을 치우며 함께 자취를 감췄다. 산성 시장은 순식간에 다시 고요해졌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안팎에 불과하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곳 공주 산성 시장에서만큼은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인파 속 어르신들의 달뜬 표정으로 미루어 보면, 여론 조사 결과가 왜곡됐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을 법도 하다. 환호하며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인파 속에서 대통령의 목소리는 내내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시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대통령에 대한 반응은 심드렁하다 못해 차가웠다. 편의점에서 만난 한 시민은 대개 역대 대통령이 방문한 가게는 '맛집'이나 '인스타 성지'로 소개되어 손님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이상하리만큼 윤석열 대통령은 예외라고 했다. 방문 사실을 밝히거나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은 곳이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노점상의 주인은 "대통령이 오든 말든 관심 없다"며 "지지율이 낮으니, 아버지의 고향에 와서 박수받고 기분 전환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시장 방문의 의미를 깎아내렸다. 지금이 대통령이 방문했다고 시장의 매출이 느는 시대냐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대통령에 대한 시장 안과 밖의 시선은 그렇듯 하늘과 땅 차이였다.

"참 구리다."

돌아오는 길,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말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그가 민심에 다가서려는 태도가 참으로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의 당원들을 소집하는 것도 모자라, 관내 경찰력을 총동원하고, 기자들을 대동해 전통 시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는 모습은 대통령의 인식이 수십 년 전에 머물러있다는 방증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54543?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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