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에는 라면 맛을 풀어내는 이들이 있다. 맛을 묘사하고 분석해 전체적인 라면 맛의 ‘방향’을 잡는 일을 한다. 언제 어디서나 꾸준한 라면 품질을 유지하고,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는 제품 개발을 위해 이들은 업무와 별도로 일주일에 두 번 ‘감각평가’도 받는다. 일종의 미각 특별 훈련이다. 지난달 12일 한겨레는 농심 연구소를 찾아, 라면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들)’인 이들과 함께 감각평가를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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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혀’ 넘어 입안서 ‘어우러지는 맛’ 분석
“청양고추, 베트남 고추 등 재료에 따라 입안에서 느껴지는 매운맛 패턴이 모두 달라요. 혀 안에서 (매운맛이) 치고 올라오는 게 달라요.”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에 자리 잡은 연구소에서 만난 스프개발1팀 소속 마유현 책임과 서영주 선임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16명의 연구원이 ‘전문 패널’로 선정돼 일주일에 두 번 30분씩 감각평가를 받는다. 라면·스낵·음료 등 농심 제품의 정확한 맛 분석을 위해 미각 훈련을 수시로 받는 것이다.
연구소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책상에는 각기 다른 숫자가 적힌 종이컵 3개가 놓여있었다. 종이컵에는 겉보기에 모두 비슷한 라면 국물이 담겨 있었다. ‘세 가지 국물을 맛보고 맛을 묘사하라’는 감각평가 첫 과제를 받았다. 마 책임과 서 선임과 함께 국물을 들이켰다.
‘이것도 라면 맛이고, 저것도 라면 맛인데?’ 순간 당황했다. 평소 라면을 즐겨 먹지 않지만, 세 가지 국물 맛이 모두 다름을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맛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느끼는 대로 ‘사골국물 느낌이 난다’, ‘버섯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라고 적었다.
반면 마 책임과 서 선임은 재료와 조리 방법, 향을 중심으로 묘사했다. 이들은 ‘우려낸 표고버섯 풍미’, ‘고추 볶음 향’, ‘간장과 고춧가루 끓인 맛’ 등 식재료와 요리 방법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모두 다 같은 신라면 브랜드입니다.” 알고보니 3개의 국물은 봉지·큰 사발·작은 사발(컵) 등 용기만 다른 모두 같은 신라면 국물이었다. 감각평가 진행 담당인 농심 고객가치연구팀 소속 하효정 책임은 “용기 특성에 따라 면의 중량이 달라 스프 맛이 다르다“며 “기본적으로는 봉지 신라면 기준으로 같은 맛이 날 수 있도록 개발됐다”고 했다. 제품마다 달리 조미된 면이 스프와 어우러졌을 땐 모두 엇비슷한 ‘신라면 맛’을 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서 선임은 “제품 개발 때는 면, 스프 담당자들끼리 개발 완성될 때까지 계속 소통한다. 면에 따라서 똑같은 스프여도 완전히 조리 후에 맛이 달라진다. 스프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면에도 조미한다. 그래서 라면 제품마다 면수의 맛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사람의 미각을 모방한 ‘전자 혀’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미각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기술적인 한계도 있지만, 결국 ‘맛있다’고 느끼는 건 사람, 소비자이기 때문에 사람이 내린 종합적인 맛 평가가 필요하단다.
‘맛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마 책임은 “단맛의 경우에도 ‘달달하다’, ‘달큰하다’ 처럼 다양한 표현이 있다. 어떻게든 제품의 특성을 하나의 통일된 단어로 만드는 게 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매우면 잘 팔린다? 경쟁 치열 라면시장, 1등 농심의 고민
‘케이(K)-매운맛’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매운 라면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스코빌 지수(SHU) 5000 이상의 매운 국물 라면 시장 규모는 2076억원으로, 2021년 1905억원 대비 8.9% 늘었다. 매운 국물 라면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업계에선 신라면(스코빌 지수 3400)만큼 또는 그 이상 매운 제품을 매운 국물 라면으로 분류한다. 스코빌 지수는 캡사이신 농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청양고추의 이 지수는 4000~1만2000 정도다.
신라면보다 더 매운 라면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농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으로 라면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하고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매운맛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매운맛 열풍과 더불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매운맛의 범주 또한 넓어진 점도 농심이 안은 과제다.
마 책임은 “예전에는 청양고추, 고춧가루 같은 재료로 칼칼한 매운맛을 즐겼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마라·페페론치노·베트남 고추 같은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서 매운맛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옛날에는 5단계 맵기를 두고 사람들이 ‘정말 맵다’고 느꼈지만, 이젠 5단계가 하나도 안 매운맛이 되어 버렸다. 소비자들의 매운맛 기준이 더 높아져서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신라면도 매운맛 강도를 약간 조정했다”고 했다. 이날 농심 쪽은 ‘언제 신라면 맵기를 올렸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다만, 업계에선 2017년 이전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지금보다 낮은 2900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년 넘게 미각 훈련을 받아 온 이들에겐 나름의 고충도 있다. 서 선임은 “흔히 라면 회사 다닌다고 하면 맛있는 것만 먹는다고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매운맛, 쓴맛 등 다양한 맛을 강도별로 훈련한다. 제품이 많으면 중간에 입도 헹구고 물도 마시면서 배부른 걸 참고 계속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마 책임은 “음식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시어머니께서 종종 ‘음식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나도 모르게 ‘간이 좀 안 맞네요’라고 하면 굉장히 예민해지신다. 식구들한테 섣불리 맛에 관해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고 했다.
“수백번 테스트…조리법 꼭 지켜라”
가장 맛있게 라면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들은 대번에 “조리 방법대로 먹어달라”고 말했다. 특히 선첨, 후첨 스프 넣는 ‘순서’를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라면 스프를 선첨, 후첨으로 따로 나눈 이유가 다 있거든요. 면이랑 어우러져서 열을 받았을 때 맛이 제일 잘 발현되는 원료들로 구성한 스프는 선첨이고, 후첨에는 나중에 넣었을 때 향이 잘 보존되는 원료들이 담겨 있어요. 정말 ‘소비자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봉지에 수백번 테스트한 조리방법을 크게 써놓는 것이니 꼭 지켜서 드셔줬으면 좋겠어요.”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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