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걸그룹 뉴진스와 소속사 어도어가 결국 파국을 맞았다. 혹자는 “연예인 얘기가 뭐가 중요하냐?”고 묻는다. 이는 아직도 ‘연예인=딴따라’라고 여기는 낡은 생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K-콘텐츠 총 매출액은 148조160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매출 합인 143조1081억 원을 넘는 수치다. 엄연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산업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진스는 K-팝 업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최단기간에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정상에 오른 그룹이다. 지난해 매출만 1102억 원이었다. 그런 그룹이 “소속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했으니, 산업 안정성을 꾀해야 하는 K-팝 시장은 숨죽여 법적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모기업인 하이브가 2021년 자본금 100%인 161억 원을 출자해 어도어를 설립했음에도, 자칫 ‘깡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1월 28일 저녁 서울 강남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연 뉴진스는 “29일 자정부터 뉴진스와 어도어는 계약을 해지할 것을 말씀드립니다”라고 밝혔다. 현장 취재 과정에서 문화일보는 “법률 검토를 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하이브와 어도어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내용증명에 쓰여 있는 내용대로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주장’만 있을 뿐 ‘근거’는 미흡했다. 게다가 뉴진스는 그들이 보낸 내용증명에 대한 어도어의 답변서를 보기 전 기자회견을 결정했다. 그들의 독자 노선 구축이 정해진 수순이라 읽히는 이유다. 거듭된 법적 검토 질문에 결국 사회자가 “법률 검토와 관련된 부분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막아섰다.
통상 전속 계약 해지 절차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시작된다. ‘인용’되면 독자 활동이 가능해지고, 구체적인 잘잘못은 본안소송에서 가린다. 하지만 뉴진스는 이마저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행태다. 일각에서는 “법률 검토도 안 했다”고 꼬집는데, 이는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결정이란 합리적 의심이 든다.
뉴진스와 어도어는 결국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적법하게 계약이 해지됐는지 여부도 법적으로 따져야 한다. 다만, 뉴진스는 ‘먼저’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독자 행동을 시작하면 어도어는 이를 막기 위해 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낼 수도 있다. 이때 뉴진스가 ‘소송당한’ 입장에서 다시금 전속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법원이 ‘신뢰 관계 파탄’을 이유로 ‘인용’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렇다면 이후 뉴진스는 자유롭게 독립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
다만 간과한 것이 있다. 그들의 일방적 독자 노선이 위법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들의 책임도 커진다. 최대 6000억 원에 이른다는 위약금 분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그들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함께하고 싶다”고 외쳤다. 다시 손잡게 되더라도 위약금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물론 “계약을 위반하지 않아 위약금을 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주장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상황까지 고려한 결정인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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