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2,429 14
2024.11.30 20:58
2,429 14

https://img.theqoo.net/YSHjug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 서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다음 날도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다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김행숙, 문지기

 

 

 

 

 

 

그녀는 심장이 너무 오래 뛰어서

사랑이 항상 생매장으로 끝난다

 

가슴에 동글동글 솟아난 무덤엔

아무도 뽑지 않는 무성한 잡초

 

언젠가 호랑이가 떨어진 수수밭의

떨어져도 죽지 않는 호랑이의

잘못된 기도처럼

붉은 울음

 

떡 하나만 주면

떡 하나만 주면

착해질 줄 알았는데

(떡은 심장에 좋은 수수팥떡)

 

그녀는 심장이 너무 오래 뛰어서

가슴 속에 거듭 떨어지는 호랑이가 산다

스무 개의 발톱으로 자기를 묻는다

 

호랑이가 떡으로만 살 수 있는가

먹어서 배부른 것이 사랑인가

호랑이는 너의 핵심

해님 달님이 먹고 싶었다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정한아, 회의적인 육식동물의 연애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을 것을 사간다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

 

/진은영, 오필리아

 

 

 

 

 

목록 스크랩 (4)
댓글 1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아비브 NEW 선케어💙] 촉촉함과 끈적임은 다르다! #화잘먹 피부 만들어주는 워터리 선세럼 체험단 모집! 449 02.26 53,006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071,510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5,597,19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036,25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7,810,23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3 21.08.23 6,266,27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2 20.09.29 5,222,320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81 20.05.17 5,872,89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2 20.04.30 6,263,63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179,414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48333 기사/뉴스 '요식업 CEO' 이장우, 연매출 어느정도길래…"500억? 자신있어" 21:44 138
2648332 유머 드디어 양산에 대한 지드래곤 공식 입장 3 21:43 789
2648331 정보 고대 그리스인들의 돈고가 너덜너덜했던 이유 11 21:43 902
2648330 이슈 지금 들으니 너무나도 싸이노래인 15년전 케이팝 7 21:42 277
2648329 이슈 삼일절 일본에서 탄핵반대 집회한 내란동조범 세력들 21:42 192
2648328 이슈 오늘자 엔믹스 설윤이 추는 에스파 위플래시.twt 1 21:42 397
2648327 이슈 디저트 진짜 맛있게 먹는 봉준호.gif 5 21:41 965
2648326 이슈 한국 브랜드 딘토가 독립운동 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한다고 하자 불편하다는 일본인 16 21:41 905
2648325 유머 댕댕이한테 밸리댄스 옷을 입히면....... 21:40 319
2648324 이슈 농심에서 육개장 사발면 도자기 그릇이 나왔나봐 10 21:40 1,746
2648323 유머 키보다 깊은 강을 건너는데 코끼리라 개이득인 아기코끼리 4 21:39 686
2648322 유머 실수로너무많이먹었어요 5 21:37 1,405
2648321 유머 슬리데린:씨발 4 21:37 567
2648320 이슈 아니, 나눔명조로 저걸 해낸다고?;;;;;;;;;;; 8 21:36 2,164
2648319 이슈 [Hearts2Hearts] 하츠투하츠 The Chase 챌린지💙 5 21:34 574
2648318 이슈 발소리 쾌감버전도 낉여온 ARrC (아크) 'nu kidz' | Dance Practice (Fix ver.) 21:34 51
2648317 이슈 젤렌스키 미국 기자한테까지 꼽먹음 41 21:33 2,033
2648316 이슈 영원히 가슴에 새겨야할 2n년전 케이팝 21:33 630
2648315 이슈 20살 때 팔았던 정자로 태어난 소년이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법적인 아버지와도 서로 얽히게 되는 독특한 부자 관계를 담은 영화.jpg 2 21:32 1,755
2648314 유머 동굴목소리에 눈웃음 콤보인 아이돌.jpg 21:31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