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1,776 14
2024.11.30 20:58
1,776 14

https://img.theqoo.net/YSHjug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 서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다음 날도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 내 직업이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다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김행숙, 문지기

 

 

 

 

 

 

그녀는 심장이 너무 오래 뛰어서

사랑이 항상 생매장으로 끝난다

 

가슴에 동글동글 솟아난 무덤엔

아무도 뽑지 않는 무성한 잡초

 

언젠가 호랑이가 떨어진 수수밭의

떨어져도 죽지 않는 호랑이의

잘못된 기도처럼

붉은 울음

 

떡 하나만 주면

떡 하나만 주면

착해질 줄 알았는데

(떡은 심장에 좋은 수수팥떡)

 

그녀는 심장이 너무 오래 뛰어서

가슴 속에 거듭 떨어지는 호랑이가 산다

스무 개의 발톱으로 자기를 묻는다

 

호랑이가 떡으로만 살 수 있는가

먹어서 배부른 것이 사랑인가

호랑이는 너의 핵심

해님 달님이 먹고 싶었다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정한아, 회의적인 육식동물의 연애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을 것을 사간다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

 

/진은영, 오필리아

 

 

 

 

 

목록 스크랩 (5)
댓글 1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주지훈×정유미 tvN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석지원×윤지원 커플명 짓기 이벤트 162 11.29 33,281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3,921,13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7,717,72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023,495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7,403,51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5 21.08.23 5,397,48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1 20.09.29 4,361,72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58 20.05.17 4,950,22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3 20.04.30 5,412,97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182,777
모든 공지 확인하기()
1431033 이슈 맨손으로 지뢰 옮기다 터졌는데 책임없다는 우리나라 군대.jpg 2 01:45 360
1431032 이슈 33년 전 오늘 발매♬ X JAPAN 'Say Anything' 01:45 15
1431031 이슈 1년에 단 하루, 합법적인 살인이 가능하다면? 영화 더 퍼지 (The Purge,2016) 1 01:44 158
1431030 이슈 새벽 1시 멜론 TOP100 프리징 순위 1 01:40 366
1431029 이슈 아이들 재계약 소식 발표에 울컥한 장원영 4 01:37 1,255
1431028 이슈 아이브 장원영 공주 멤트 업 3 01:33 625
1431027 이슈 29년 전 오늘 발매♬ 히로세 코미 'ゲレンデがとけるほど恋したい' 01:32 53
1431026 이슈 매운맛으로 유명한 일본컵라면 10 01:31 1,485
1431025 이슈 부산에 있다는 돼지우동.jpgif 12 01:31 1,421
1431024 이슈 venue101(일본음방 라이브토크)출연한 베이비몬스터 2 01:27 382
1431023 이슈 장근석: 거기지 큐브? 너가 너네 회사 짱먹었다며? 13 01:24 3,547
1431022 이슈 2년전 오늘 발매된, 스텔라장 "Winter Dream" 01:20 124
1431021 이슈 싹 다 남친짤 느낌나게 올라온 차은우 인스타 사진 20 01:20 2,102
1431020 이슈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포토북 소개글 번역 전문 4 01:19 637
1431019 이슈 29년 전 오늘 발매♬ 모리타카 치사토 'ジン ジン ジングルベル' 01:17 96
1431018 이슈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왜 보수로 기울었나 42 01:16 2,315
1431017 이슈 다이소가 모에화한 2025년 뱀띠 16 01:15 3,612
1431016 이슈 전소연 대상 수상소감 듣고 울먹이는 장원영..x 23 01:08 5,484
1431015 이슈 소설가 김훈이 묘사하는 딸 45 01:07 3,655
1431014 이슈 31년 전 오늘 발매♬ 히로세 코미 'ロマンスの神様' 1 01:06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