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피의자 절반가량이 20대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엔 중장년층이 주요 피해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젊은 층이 범죄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누구나 보이스피싱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 개선과 맞춤형 예방 대책이 요구된다.
30일 아시아경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보이스피싱 피해자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전체 피해자 1만8902명 중 20대 이하는 8886명에 달한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47%로 2019년(10.2%)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성별로는 20대 남성(6391명)이 여성(2495명)과 비교해 훨씬 많았다.
20대가 주요 타깃이 된 이유로는 개인정보 인식 및 사회 경험의 부족이 꼽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20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내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경향을 보인다"며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보이스피싱 범죄의 타깃이 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기관 사칭형 수법을 많이 쓴다. 사회초년생 20대 C씨는 ‘서울 모지검 최 검사’를 사칭한 사기범의 연락을 받았다. ‘최 검사’는 “C 씨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중고나라 사기에 이용되고 있고, 수사를 위해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황한 C 씨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신분증 등을 제출했다. 사기범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 은행계좌의 예금과 C 씨 명의 대출로 5000여만 원을 빼갔다.
실제로 지난해 기관 사칭형 수법의 보이스피싱 1만1314건 중 20대 이하 피해자 비율은 76%에 달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경우에 압박감을 느껴 보이스피싱의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 및 정부 기관과 통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이 생기는 일은 없기 때문에 전화가 와도 끊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보이스피싱 피의자 역시 20대가 가장 많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붙잡힌 2만2386명의 피의자 중 20대 이하가 9842명으로 44%였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현금 수거책 등의 역할을 맡으며 범행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월 A씨는 인터넷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찾던 도중 계좌로 들어오는 돈을 출금해서 갖다주면 일당 2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면서 사기미수 방조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아르바이트가 아니고 보이스피싱 등 불법적인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묵인하거나 외면한 채 사기미수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오영훈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합동수사단 경찰대장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금전적 필요가 있는 20대의 경우 고수익 알바 제안이 들어오면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며 "계좌 대여와 같은 간편한 방식으로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가능하고, 모든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범죄 의식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보이스피싱 총책마저 등장했다. 지난 9월엔 중국을 거점으로 콜센터를 차려 피해자 101명으로부터 약 44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총책 B씨(27)가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 2019년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업체의 상담원으로 취업해 4년간 수법을 배우고 직접 조직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20대는 보이스피싱과 무관하다'라는 인식 개선과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보이스피싱 피해의 대상이 되기도, 혹은 그를 이용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며 "디지털 능력을 잘 활용한다고 과신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에 쉽게 유인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정확히 파악해서 피해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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