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개봉 영화 ‘서브스턴스’ 통해
할리우드 미의 기준 신랄히 비판
신체가 기괴하게 뒤틀리고 뭉개지는 이 영화는 보다가 두세 번쯤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연약한 곳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데미 무어(62)의 연기가 끝까지 관객을 붙든다. 19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한 ‘왕년의 스타’ 무어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영화 ‘서브스턴스’가 다음 달 11일 개봉한다. 연기 인생의 “놀라운 3막에 들어섰다”는 찬사와 함께, 무어는 평생 거리가 멀었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무어는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였으나 지금은 싸구려 에어로빅 TV쇼를 진행하는 한물간 여배우 엘리자베스 역을 맡았다. 늙었다는 이유로 에어로빅 쇼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엘리자베스는 젊음을 되돌려준다는 어둠의 약물 ‘서브스턴스’에 손을 댄다. 약물 복용으로 탱탱한 피부와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는 분신(마거릿 퀄리)이 탄생하고, 엘리자베스는 “더 어리고 아름다운 나”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영화는 노화에 대한 공포,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기괴한 신체 변형으로 시각화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을 당시, 60대 무어의 전라 노출로 화제를 모았지만 전혀 섹시하거나 관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무어의 아름다움을 의도적으로 짓이긴다. 무어는 누구나 한번쯤 거울 앞에 서서 했을 법한 자기혐오를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촬영 후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졌을 정도로 무어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산화하는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무어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역할은 내가 멋지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완벽할 필요가 없는 역할이 주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데미 무어의 존재는 이 영화의 완성과도 같다. 무어는 이 영화에 캐스팅되기 위해 신예 감독 코랄리 파르자에게 자신의 회고록 ‘인사이드 아웃’을 건넸다. 2019년 출간한 이 책에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전성기 시절의 극단적인 다이어트,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경험이 담겼다. 세 번째 남편이었던 16세 연하 배우 애슈턴 커처의 불륜으로 약물 중독과 섭식 장애까지 겪었던 사실도 털어놨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겹쳐 보인다. 아직도 무어에겐 7억원을 들여 전신 성형을 했다는 소문이 뒤따라 다니고, 그의 기사엔 늘 “소름 끼치는 동안 외모” ”탄탄 몸매”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다. 회고록을 읽고 무어를 캐스팅한 파르자 감독은 “나는 그녀가 이미 모든 종류의 공포와 폭력에 맞선 사람임을 깨달았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화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해 온 할리우드에 대포를 난사하는 듯한 클라이맥스가 압권.
무어는 “1980~1990년대엔 미의 기준이 더 극단적이었고, 촬영 전에 ‘살을 빼라’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폭력은 외모를 최상위 가치로 두고, 내가 나에게 가한 고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지금까지 존재해온 어떤 규칙에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자유로움을 느꼈다. 62세가 되어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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