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18일 발트해에서 발생한 해저 광섬유 케이블 2개의 절단 사건은 당시 중국 화물선 ‘이펑(伊鵬) 3호’가 고의로 닻을 올리지 않고 운항하면서 일으킨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유럽 수사 당국의 조조사 내용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이펑 3호는 길이 225m에 폭이 32m인 화물선으로, 러시아산 비료를 적재하고, 지난 15일 러시아의 발트해 항구 유스트-루가를 출발했다.
발트해 연안의 독일ㆍ스웨덴ㆍ덴마크 등 북유럽국가 수사기관들은 이펑 3호가 고의로 닻을 해저면에 끌면서 약 160㎞를 운항해 이 지역 나토(NATO) 국가들을 연결하는 2개의 케이블을 끊은 정황을 파악했다. 이로 인해 스웨덴과 리투아니아를 잇는 218㎞ 길이의 해저 케이블 BCS 동서 인터링크와, 핀란드 헬싱키와 독일의 로스트크 항을 잇는 1200㎞ 길이의 C-라이언 1 케이블이 끊겼다.
유럽 수사당국의 한 고위 관리는 WSJ에 “화물선 선장이 닻을 올리는 것을 잊고 질질 끌면서 수 시간 운항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전혀 몰랐을 개연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이 중국 화물선이 러시아 항구를 출발하기에 앞서 러시아 정보기관으로부터 해저 케이블에 대한 파괴 공작을 사주 받았는지를 밝히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발트해의 평균 수심은 55m다. 유럽 당국은 이 해저 케이블 파괴가 유럽의 주요 인프라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지속적인 공격의 일부로, 러시아가 배후 조종한 것으로 본다.
이펑 3호는 발트해에서 북해로 빠져나가기 직전에 나토 소속 발트해 국가들의 전함에 포위됐고, 이후 덴마크 해군 선박에 의해 발트해와 북해를 잇는 카테가트 해협에 정박됐다. 국제해상법상 나토 선박이 이펑 3호를 나토 관할의 항구로 나포할 수는 없으나, 스웨덴과 독일 당국은 중국 저장성 닝보에 위치한 이펑 3호의 소유주 닝보 이펑해운과 협상해 이 선박에 접근하고 선원들을 신문할 권리를 얻었다고, WSJ는 보도했다.
이 선박을 추적한 나토의 정보에 따르면, 이펑 3호는 현지시간 17일 밤 9시 발트해의 스웨덴 영해에 진입해 닻을 내리고 운항해 첫 번째 케이블(스웨덴~리투아니아)을 끊었고, 닻이 내려져 속도가 매우 떨어진 상태로 178 ㎞를 더 나아가 다음날 오전 3시쯤 두 번째 해저 케이블(핀란드~독일)을 끊었다. 사고 시간대에 이펑 3호의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운항 데이터를 기록하고 송수신하는 트랜스폰더는 꺼져 있었다.
이후에 이펑 3호는 지그재그로 운항하면서 닻을 올렸고 운항을 계속했다. 덴마크 해군 선박이 추적했고, 북해로 빠져나가기 직전에 이 선박을 나포했다. 유럽 수사당국의 조사에서는 이펑 3호의 선체와 닻의 모양이 닻이 해저면에 끌리면서 케이블을 절단할 때 발생하는 훼손 상태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독일 경찰도 순찰선인 밤베르크호를 보내 수중 드론으로 사건 현장을 조사했고, 스웨덴과 덴마크 선박은 해저 상황을 조사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중립국 입장을 포기하고 각각 작년 4월과 올해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정식 멤버로 가입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터지자, 러시아 배후를 의심했다. 작년 2월 네덜란드 정보당국은 “러시아의 첩보선이 북해 일대의 가스관과 풍력 발전소 등 인프라 시설을 은밀하게 파악하면서 사보타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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