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사투리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 잇따라
“이이. 이. 이이?”
글자만 봐서는 이게 무엇인가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게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명대사’라면? 이이경 주연의 드라마 ‘결혼해You’(채널 A)에서 지역 ‘결혼사기진작팀’에 배정받은 7급 공무원 조수민(정하나 역)이 충청도 출신 섬총각 이이경(봉철희 역)을 결혼시키려 애쓰다 전 남친과 마주친 상황. 조수민은 전 남친 보란 듯이 이이경 팔짱을 끼고는 “결혼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이이경은 아무 생각 없이 “그렇지” 하고 받아쳤다 “뭐라고?”라고 하는 장면이다. 보통의 대화라면 “음. 그럼 그럼. 결혼할 사이지. 아니 우리가 결혼할 사이라고?”라고 풀어서 설명해야 할 것이 여기선 ‘이’ 하나로 해결된다.
최근 충청도의 ‘말맛’으로 채워지는 드라마가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OTT ‘소년시대’(쿠팡플레이)를 비롯해 드라마 ‘힙하게’(JTBC) 등에서 충청도 사투리가 화제를 끌더니 이제 충청도 사투리를 이용한 로맨틱 코미디가 연이어 제작된 것이다. 실제 충청도 청주 출신인 배우 이이경의 ‘원조’ 충청어를 들을 수 있는 드라마 ‘결혼해You’를 비롯해, 다음 달 19일 첫선을 보이는 김해숙·정지소 주연의 드라마 ‘수상한 그녀’(KBS2)는 지난 2014년 866만 관객을 동원한 나문희·심은경 주연의 영화를 드라마화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뽀글 머리를 장착한 정지소의 70대 ‘찐할매’ 변신이 벌써부터 화제다.
충청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취하는 로맨스’(ENA)에도 “이이”가 자주 등장한다. 유명 수제 맥주 양조장 대표이자 ‘철벽남’인 이종원(윤민주 역)을 포섭하기 위해 주류 회사 영업왕 김세정(채용주 역)이 충청도에 위치한 윤민주네 양조장으로 진입하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터져나왔다. 윤민주의 부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입 금지’라며 온몸으로 막던 지역 이장인 장혁진(이이장 역)이 김세정의 삼고초려(?)에 “이이” 하고 결국 바리케이드를 푼다. “진정성이 있슈”라며 말이다. 몸에 좋은 각종 비타민, 오메가3 같은 약통을 한 트렁크 품에 안고 “나가 돈과 권력에 약혀”라고 하는데도 표정을 보면 돌을 던질 수가 없다. 철벽남과 열정녀를 연결시키는 고리이자,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여유로운 충청도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충청도 사투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주인공을 헷갈리게 하는 극적 장치로 자주 쓰인다. 결혼 시장에서 결코 인기 없을 것 같은 섬총각 이이경의 마음 씀씀이에 슬며시 빠져드는 조수민에게 이이경은 말한다. “아 시방, 눈빛이 왜 그라유. 이이 눈빛 또 지랑 결혼하고 싶은 눈빛인디.” 비혼주의로 자신을 꽁꽁 동여맸던 조수민은 이이경이 잽처럼 자꾸 치고들어오는 충청어에 점점 녹아들어 간다. 이이경의 어린 쌍둥이 조카들 역시 이들의 애정을 부추키는 절대적 도우미들. 결혼 중매자로 나선 조수민에게 조카들은 “지는 언니가 좋은디”라며 삼촌과 잘돼라며 불을 지피더니, 막상 둘이 다정한 듯 보이자 “시방 이거 시궁창이여”라고 했다 “막장인디?”라더니, “아이고, 미성년자 관람불가구먼”이라고 말한다. 물론 아이들의 상상처럼 아직까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다. 얼굴이 벌게지고 마음이 콩닥이는 건 어른의 몫이다.
‘취하는 로맨스’에서의 충청도식 ‘바람잡이’는 더 적극적이다. 이종원의 홉(hop·맥주 원료) 재배 농장에서 일하는 백현주와 박지아는 남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는 초민감자 엠패스(empath) 성격의 이종원에게 “염병은 나중에 떨어”라며 끊임없는 수다로 결국 그를 웃게 만든다. 이종원의 철벽에 “그렇게 철벽을 쳐야 속이 후련했냐”(영화 ‘해바라기’ 패러디)라는 둥 따끔히 회초리를 내더니 김세정과 이종원을 깊은 산속으로 몰아넣는 등 사랑의 작대기 역할을 십분 해내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약간의 동문서답식 허를 찌르는 표현 방식과 여유와 해학에서 충청도 방언의 미덕을 찾는 이도 있지만 특히 최근 들어선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방언을 찾다 보니 충청도 방언이 부각된 측면이 있다”며 “날 세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사도 충청도 사투리가 가미되면 긴장을 완화하고 대중의 경계를 허물며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종 젠더 감수성 등 언어 사용에 더 민감해진 이들의 불만을 피해갈 수 있는 데 유리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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