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숏폼 드라마’(회당 10초~15분 정도의 짧은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했던 ‘바다오쭝차이’(覇道總裁·재력과 외모를 겸비한 엘리트 남성)와 ‘사바이톈’(傻白甛·백치미 넘치는 여주인공)이 금기가 됐다.
26일 중국 국영 CCTV 인터넷판 등에 따르면, 중국 방송 감독 기관인 국가광전총국이 최근 ‘숏폼 드라마 관리 지침’을 발표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광전총국은 “제작사들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설정을 경쟁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면서 “권력층이나 재벌과의 결혼을 숭배하는 기조를 부추겨선 안 된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더우인(중국판 틱톡)이나 OTT에서 숏폼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당국은 특히 ‘바다오쭝차이’라는 신조어를 제목에 내세운 작품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꽃미남 재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들이 중국 기업가의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흥행한 숏폼 드라마 ‘여자 나이 40세에 행운이 왔네’에서는 20대 남성 재벌이 40대 여성 가정부와 사랑에 빠져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 나왔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무극(無極)에서 돌아왔다’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27세 남성 CEO(최고경영자)가 청소부 아주머니와 결혼을 약속한 다음 2000만 위안(약 39억원)을 건네기도 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제작사들이 이익에 눈이 멀어 미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광전총국은 “노력 없이 성공하거나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조장하는 내용은 엄격하게 규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구시대적인 ‘남녀 차별’ 설정이나, 재물을 탐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악독한 시어머니’를 응징하는 식의 천편일률적 이야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이런 통제에 나선 것은 규제가 비교적 느슨했던 숏폼 드라마의 시청자가 중국 인터넷 이용자의 52%인 5억7600만명(6월 기준)에 달하며 새로운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45~64세 장년층이 충성 시청자의 43%를 차지하며 사회 영향력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조사회사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500억 위안(약 10조원)을 돌파해 영화 시장(549억 위안·작년 기준)과 비슷해질 전망이다. 지난 한 해 중국에서만 1000편이 넘는 숏폼 드라마가 제작됐고, 글로벌 숏폼 드라마 앱 72개 가운데 중국산이 52개(72.2%)에 달한다.
게다가 숏폼 드라마는 일반 TV 드라마에서 규제하는 환생, 신데렐라 스토리, 노골적 복수 등 자극적 소재를 주로 다루기에 당국 입장에선 부적절한 사회 풍조를 조장하는 ‘불량 콘텐츠’로 비칠 수 있다. 이에 중국 문화계에서는 향후 숏폼 드라마에 대한 추가 조치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5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이다’ 감정만 추구하는 숏폼 드라마는 (사회) 문제와 감정의 ‘증폭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만 제작사들이 규제를 우회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일부 작품은 여주인공이 장사를 통해 자수성가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으며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비판을 피하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72655?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