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신발 192켤레와 국화꽃 192송이가 놓였다. 숫자 '192'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과 주변인 192명을 상징한다. 이마저도 정부의 공식 통계가 부재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여성 살해 사건을 분석한 끝에 집계한 숫자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15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과 주변인은 최소 1672명이다. 지난해 한 해만 최소 19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됐다. 매년 수백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고 있지만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보신각 앞에서 여성 살해를 규탄하기 위한 퍼포먼스 '192켤레의 멈춘 신발'을 진행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여성신문에 "여성 살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근절 대책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며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사무처장은 이어 "지난 15년간 언론에 보도된 사례가 1672명이라는 것은 (여성 살해 사건이) 매년 평균 100건씩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숫자가 아닌 사람의 목숨을 가리키는 숫자"라며 "1년에 100건이 넘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수치지만 이 숫자의 무거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날 거리를 지나던 일부 시민들은 보신각 앞에 놓인 신발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촬영하며 관심을 보였다. 전시된 신발을 바라보던 20대 여성 A씨는 "최근 워낙 이런 일들(여성 살해)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신발을 시각적으로 전시해놓으니 사람들도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보게 되고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B씨 역시 "실제로 보니 말로만 들었을 때와 느낌이 달라서 마음이 안좋다"며 "너무 익숙한 이야기인지라 숫자로는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와서 신발들을 보니 어쩌면 내 친구와 동료, 그리고 내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시된 신발을 촬영하던 40대 여성 C씨는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사건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지인이라 불린 남성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데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많은 여성과 아이, 반려동물까지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대응책이 여전히 없어 분노스럽다"고 성토했다.
이어 "전 애인, 전 남편, 혹은 현 남편에 의해 (살해) 당했다는 뉴스가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다들 무감각한 것 같다"며 "'여성폭력 추방주간'에 맞춰 잘 기획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들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매해 늘어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입법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 김한규 의원 등이 각각 교제폭력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4건의 법안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 사무처장은 "교제폭력과 관련해 입법 움직임도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대응이) 느리다"며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폭력은 가정폭력처벌법으로 다루고 있지만 가정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가해자가 실질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부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 없이 가정폭력처벌법에 (대상자를) 교제 관계까지 단순히 확대하는 것은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며 "내실 있게 해당 문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현행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s://naver.me/xHgRGL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