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아니라 ‘손주’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 빽빡하게 세워진 고층 빌딩 사이에 ‘알박기’처럼 끼어있는 만둣국 노포 맛집 ‘평만옥’ 주인 무옥(김윤석)은 수십, 수백억 원대 자산이 있어도 그걸 물려줄 ‘핏줄’ 하나 없는 게 ‘한’(恨)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승기)이 출가해 승려가 되면서 함씨 가문의 대가 끊겨버리게 된 ‘건물주’는 죽어서 조상을 볼 낯이 없고, 자기가 죽어도 제사상을 차려줄 사람이 없으니 한숨만 늘어간다.
‘변호인’, ‘강철비’를 만든 양우석 감독이 처음 도전한 ‘대가족’은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가족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이어지는 대(大)가족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對) 이야기를 다룬다.
2002년 ‘집으로’, 2008년 ‘과속스캔들’, 2013년 ‘7번방의 선물’ 등에 이어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 영화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가족 구성원이 점차 하나가 되면서 그 안에서 감동과 교훈이 잔잔하게 흐른다.
한평생 고집스럽게 돈을 번 무옥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어린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사람이 바뀌기 시작한다.
6·25 전쟁 때 월남해 하루에 18시간 노동을 하는 기계처럼 살며 돈을 써본 적도 없어 자린고비도 울고 갈 정도지만, 출가한 아들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어린 남매가 찾아오면서 잿빛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 어린 남매는 문석이 대학 시절 불임부부를 위해 500번 넘게 기증한 정자로 태어난 아이다. 문석은 단지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무옥은 그런 손자도 버선발로 뛰어 나가 품에 안는다.
갑자기 끊길 줄로만 알았던 ‘핏줄’이 다시 이어지면서 “땡중”이라 막말했던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고, 손자들의 “할아버지” 소리에 헤벌쭉 웃기까지 한다.
손주와 손잡고 다니려고 “젊게 보이는” 염색도 하고, 옷까지 빼입는 등 영락없는 ‘손주 바보’다.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김윤석의 ‘생활 연기’에서 빚어지는 코믹한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영화는 점차 어린 남매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가족”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무리 가족의 형태나 의미, 그리고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고 해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가족은 “핏줄”보다 “정으로 더 당긴다”라는 메시지와 손주를 안고 뛰는 무옥의 뒷모습에서 “자식에게 부모는 우주요, 부모에게 자식은 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능한 신이나 간절히 평생을 섬기는 신”이라고 흐르는 이순재의 내레이션이 가슴을 잔잔하게 울린다.
무옥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38년간 손으로만 빚은 만두처럼 웃음과 감동, 교훈을 모두 담아 올 겨울 따뜻한 온기를 느끼기 충분하다.
12월 11일 개봉. 러닝타임 107분.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382/0001164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