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9년 전 밀실 살인 사건, 그리고 어느 방송사의 '여론 살인'
5,147 9
2024.11.23 15:24
5,147 9
9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이 있다. 군인 장○○(당시 20세)씨가 휴가 중이던 2015년 9월24일 새벽 5시28분경 운동화를 신은 채 서울 공릉동 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성 박○○(당시 33세)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옆방에 있던 박씨의 예비신랑 양석주씨가 장씨와 격투를 벌였고, 장씨가 사망했다. 양씨의 살인 혐의는 정당방위로 무죄였다.

살아남은 양씨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해 10월9일 방송된 SBS '궁금한이야기Y'에서 약혼녀를 죽인 살인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궁금한이야기Y'는 <노원구 살인 사건, 군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가리키는 것은>편에서 인근 주민 오○○씨의 증언을 인용해 "살려주세요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27분이었다"고 내보냈다. 오씨 증언이 맞다면 박씨의 비명소리 이후 장씨가 양씨 집에 들어간 셈이었다.

CCTV 증거 상 이 사건은 양씨 또는 장씨 둘 중 한 명이 박씨를 죽인 범인일 수밖에 없는 밀실 살인이었다. 방송 이후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유일한 생존자였던 양씨를 살인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SBS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다. 양씨는 고소장에서 "국과수 결과 발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비보도 약속을 어겨가며 나를 약혼녀를 죽이고 비명 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온 사람까지 살해한 살인마로 지목해 수사에 방해를 가하고 수없이 많은 조작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했다"며 "공익성을 빌미로 여론재판, 여론 살인을 가한 방송에 대한 엄벌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양씨측 변호사는 SBS가 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오씨는 SBS 제작진을 만나 첫 진술에서 비명 소리를 새벽 5시27분에 들었고 3분쯤 지나 5시30분에 정확히 신고했다고 증언했으나 이들이 실제 경찰에 신고한 시점은 5시33분44초였다. 양씨측은 "SBS는 오씨가 들었다는 비명 소리가 27분이 아니라 30분경에 있었고, 이후 3~4분 뒤 오씨 일행이 112에 신고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SBS가 "오씨측 주장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장씨는 박씨를 죽일 수 없었고 결국 박씨는 양씨가 죽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방송을 송출한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2018년 5월28일 SBS제작진을 무혐의 처리했다. 서울북부지검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이 사건은 살인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아 언론 보도가 계속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했다. 양씨는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2020년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양씨는 모든 법적 대응에서 패했다. 그렇게 이 사건은 대중의 기억 속에 잊혔다.

 

tvN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가 지난 18일 방송에서 9년 전 공릉동 묻지마 살인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날 방송에선 '궁금한이야기Y'에 등장하지 않았던 결정적 CCTV가 등장했다. 장씨가 양씨의 집을 침입하기 직전 침입했다 빠져나왔던 3층 집 주인 남성이 장씨의 행동이 수상해 따라 내려와 지켜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정의석 형사는 tvN과 인터뷰에서 "군인이 양씨 집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는 거까지 목격했고 그다음 내려와서 피해자 집골목 앞에 서 있을 때 비명 소리가 났고, 잠시 후에 양씨가 뛰어나온 걸 이 양반이 다 봤다"고 말했다. SBS 방송에선 찾을 수 없었던 목격자였다.

정의석 형사는 "(양씨가) 눈앞에서 동거녀가 사망하는 걸 직접 보고 자기도 공격을 당해 상처를 입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한다면...자기도 죽고 싶은데 이 부분은 바로잡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살고 있다고 말한 기억이 있어 씁쓸했다"고 전했다. 당시 국과수 확인 결과 살해된 예비신부의 손톱에선 군인의 DNA가 검출됐다. 예비신랑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모든 과학적 증거가 양씨의 '무죄'를 가리켰다.

이날 방송에선 양석주씨가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군인이) 저를 죽이려고 칼을 휘두른 행위보다 여론 살인이 더 무섭습니다. 당해보니까 알아요. 지속적이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답이 안 나와요. … (인터뷰) 태도 보니까 저 새끼가 범인이다, 한 번 이미지가 박힌 게 절대 안 떨어지더라고요. 이 방송이 나가더라도 남편이 범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이 미치겠는 거예요."


어느덧 사건이 발생한 지도 9년이 흘렀다. SBS는 법적으로 죄가 없다. 하지만 '여론 살인' 의 가해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SBS가 방송의 영향력을 무겁게 느끼고, 과거 '찐빵소녀' 조작방송으로 3억 원의 손해배상에 나서야 했던 실패의 기억을 잊지 않고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결정적인 목격자가 담긴 CCTV를 담아내는 노력을 했더라면, 양씨가 지금보다는 덜 괴로웠을 것이다. SBS는 양석주씨에게 도의적 사과에 나서야 한다. 그게 양씨와, 지금껏 SBS를 신뢰해 온 시청자들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27144?sid=102

목록 스크랩 (0)
댓글 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최강야구 스핀오프 <김성근의 겨울방학>⚾ X 더쿠] 드디어 내일 티빙에서 마지막화 공개! 좋았던 장면 댓글 남기고 필름카메라 받아가세요🎁 22 04.13 16,867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670,834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6,362,72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544,28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8,718,08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6 21.08.23 6,651,78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3 20.09.29 5,596,12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93 20.05.17 6,316,34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8 20.04.30 6,620,21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649,12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45779 기사/뉴스 '인성 논란' 선우는 "얼탱이 없다"..소속사는 사과하고 "법적대응" [Oh!쎈 이슈] 6 01:08 2,293
345778 기사/뉴스 더보이즈 선우 측 "인성 논란 반성 중, 악성 댓글은 법적대응"(입장전문) 522 04.13 41,151
345777 기사/뉴스 기아, 러시아 시장 재진출 시동 걸었다 1 04.13 1,178
345776 기사/뉴스 [내일날씨] 전국 비 또는 눈…일부 지역 우박·돌풍 동반 5 04.13 2,777
345775 기사/뉴스 한국에만 100여 개의 비인가 국제학교가 국제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법 운영되고 있다. 그 운영 구조를 들여다보면, 일부 학교는 케이만군도 등 조세 피난처에 등록된 모회사나 재단을 통해 학교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18 04.13 4,674
345774 기사/뉴스 트럼프, 반도체 관세 질문에 "14일에 답하겠다…구체적일 것" 5 04.13 1,364
345773 기사/뉴스 [속보] 美상무 "반도체 관세는 한 달 내, 의약품은 한두 달 내 발표" 16 04.13 2,544
345772 기사/뉴스 [단독] 동해에 '포악 상어' 증가‥"난류성 어종 따라 이동 추정" 7 04.13 3,272
345771 기사/뉴스 자라 창업자도 손절 가로수길 40% '텅' 14 04.13 5,875
345770 기사/뉴스 [단독] '의리경영' 한화그룹서 작년 임금체불 30억원 발생 8 04.13 2,920
345769 기사/뉴스 [단독] 퇴근 후 걷고 싶은 길로…화려해지는 '청계천 야경' 2 04.13 3,198
345768 기사/뉴스 [단독] "선배 의사들 왜 안 싸우나"…의협서 터진 세대 갈등 25 04.13 3,486
345767 기사/뉴스 신안산선 붕괴,다가오는 골든타임…더뎌지는 구조 6 04.13 2,962
345766 기사/뉴스 “가족한테 뭐라 말하지”...아침에 눈 뜨기 두려운 서학개미 “내 돈 어디갔어” 3 04.13 2,540
345765 기사/뉴스 윤 전 대통령 측, 법정 비공개에 "재판부가 인권 보호 고려한 것‥결정에 동의" 36 04.13 1,456
345764 기사/뉴스 오늘 MBC 뉴스데스크 앵커 클로징 멘트🗞️ 16 04.13 3,279
345763 기사/뉴스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온 北 이색 음식들 4 04.13 3,524
345762 기사/뉴스 교실은 어수선한데 장관은 자화자찬‥AI교과서, 왜 급히 밀어붙였나 52 04.13 3,707
345761 기사/뉴스 한국 애니 ‘예수의 생애’ 북미 박스오피스 2위 돌풍 11 04.13 3,694
345760 기사/뉴스 (전 윤석열 탄핵심판 국회 측 대리인단) 김진한 변호사 "헌재가 '국헌문란' 인정‥큰 고비 넘어" 1 04.13 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