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사슴(Key Deer)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빅 파인 키(Big Pine Key) 섬에서만 발견되는 사슴이다. 빅파인키 섬은 인구 약 4500명의 작은 저지대 섬으로, 늪지대에 키사슴을 비롯해 새, 뱀, 악어, 이구아나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키사슴은 북미 흰꼬리사슴의 아종으로, 수컷 사슴의 어깨 높이가 1m 이하, 몸무게는 34kg에 불과할 정도로 몸집이 작다. 키사슴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보호를 받아왔는데, 그동안 이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가장 큰 위협은 로드킬이었다.
역사적으로 키사슴의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미국 1번 고속도로와 지역도로들에서 많은 키사슴이 차량 충돌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당국은 해당 고속도로에 사슴 서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3.2km 구간에 걸친 울타리, 지하 터널 등을 설치했지만,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빅파인키 섬의 특성상 지금도 매년 수십 마리의 사슴이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위협, 기후위기
한때 50마리 이하까지도 개체수가 줄어들었었던 키사슴은 미국 당국의 보호구역 지정 등 노력으로 현재 800마리까지 개체수를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키사슴은 그동안의 위협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류의 위협을 맞닥뜨렸다. 그것은 바로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키사슴의 유일한 서식지를 앗아가면서 키사슴을 다시금 멸종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최고 지대가 해발 2.4m에 불과한 빅파인키 섬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빅파인키 섬을 비롯한 20여개 인근 저지대 섬들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잠기는 지형이 늘어나면서 염분에 버티지 못하는 식물이 죽고 맹그로브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등 식생이 바뀌고 있다.
서식 환경이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키사슴이 마실 수 있는 자연 담수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섬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키사슴이 마실 물을 찾아 인간의 거주지로 들어오는 경우가 훨씬 잦아졌다.
빅파인키 섬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키사슴이 정원에서 먹이를 찾거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자주 찾아오는 사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만큼 친숙하다. 빅파인키 섬 주민 코니 리치는 “키사슴들은 매우 온순하고 사랑스럽다"며, “주민들이 더 오래 살수록 사슴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진다”고 말했다.
미국 해양대기청은 2030년까지 빅파인키 섬의 해수면이 15cm 상승하고, 담수 자원의 16%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50년에 이르면 키사슴이 선호하는 서식지의 84%가 바닷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측이다.
자연보호기구(The Natural Conservancy)의 크리스 버그 매니저는 “키사슴은 원래도 멸종에 취약한 종으로, 최근 해수면이 상승하고 서식지가 줄어들어들면서 더욱 위태로워졌다”면서, “키사슴이 더 이상 섬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동물원에 보호하는 것이 가장 책임 있는 대안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 야생동물들에게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