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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아무리 잘 관리해도 암에 걸릴 사람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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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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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이 불운’이라는, 새로운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앞세운 연구결과가 다시 한 번 ‘사이언스’에 실렸다.

 

“제가 도대체 왜 암에 걸렸나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술 담배는 하지도 않았는데! 평소에 탄 고기도 안 먹고 꼬박꼬박 건강검진도 받았어요. 가족 친지들도 모두 건강한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불쑥 환자가 질문을 던졌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간부 직함을 달 정도로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온 환자였다. 그의 질문은 암이라는 병이 어떤 기전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한 학문적인 논쟁을 하고자 꺼낸 질문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암에 걸린 것인지,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외침에 가까웠다.

 


● 암의 근본 원인은 돌연변이


필자는 지난 2월까지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설령 건강을 열심히 챙기지 않았던 환자들도, 가족에게 암 병력이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물었다.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린 것이냐고. 가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환자에게는 “담배 때문이에요”라고 겁을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에게는 정해놓은 대답이 있었다. “당신의 잘못,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실은 우리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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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암의 원인이 유전 또는 환경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오류가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GIB 제공



● 암은 ‘불운’이라는 불편한 진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암유전학자 버트 보겔스타인 박사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클론의 암세포가 처음 발생할 때, 어떤 원인으로 생기는가에 주목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의 상당수가 자체적인 세포 분열 과정에서 ‘무작위로’ 생긴다는 사실이다.


기존에는 유전 또는 환경적 이유로 주로 암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었다. 보겔스타인 박사는 지난 4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사이언스’에 논문도 실었다(doi:10.1126/science.aaf9011).


보겔스타인 박사팀은 줄기세포의 세포 분화가 많은 장기일수록 암 발병률이 특히 높다는 데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이 2015년 미국인들의 암 발병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가지 인체 조직 가운데 정상적인 줄기세포 분열이 많은 기관일수록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오류가 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추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가설을 더 정확히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전세계 69개 나라, 48억 명의 암 발병률을 분석했다.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제공하는 423개의 암 등록부를 토대로 17가지 암에 대한 발병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모든 국가에서 조직의 평생 줄기세포 분열 횟수와 암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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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수집된 암 유전체 데이터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유전적인 이유로 돌연변이가 일어나 암이 발병한 경우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환경적인 이유로 돌연변이가 일어난 경우도 전체의 3분의 1에 조금 못 미쳤다(29%). 반면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가 암으로 발전한 경우는 전체의 3분의 2(66%)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암의 3분의 2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암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무작위 요인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연구자들에게도 놀라운 수치였다. 특히 흡연이나 간접흡연 같은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을 줄 알았던 폐암도 3분의 1 가량은 무작위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췌장, 뇌, 뼈, 전립선과 같은 조직의 암은 무작위 요인에 의해 생길 확률이 특히 높았다.


● 그냥 막 살아도 된다는 얘기?


이번 연구가 생활습관을 좋게 바꾸고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면 암 발생 빈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꺾은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암을 일으키는 세 가지 인자 중 어느 요인에 자원을 집중할지 결정하려면 일단 어떤 인자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보겔스타인 박사 역시 이런 고민에서 논문을 작성했을 것이다.


가령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면, 현재의 치료 방침이 그렇듯, 선천적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의 취약한 장기를 암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 덕에 유명해진 BRCA 유전자 돌연변이나, 대장암을 일으키는 APC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생식세포 단계에서 이런 돌연변이를 정상으로 치환한 후 착상시키는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현재도 CRISPR-CAS9 등의 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윤리적인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무작위 요인. 현재로서는 무작위로 발생하는 DNA 복제 오류를 줄이거나, 발생한 오류를 치료할 확실한 방법이 없다(체내 DNA 복구 시스템이 있지만 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구되지 않는 경우 중에 발생한다). CRISPR-CAS9과 같은 유전자 가위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긴 부분을 일일이 정상 유전자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도 국소적으로 퍼진 암세포에만 가능할 뿐이다.


보겔스타인 박사는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암의 크기가 작고 초기 단계일수록 덩어리 안에 클론의 종류가 적고, 이러한 경우 항암 치료가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3파트 참조). 보겔스타인 박사와 같은 암유전학 대가의 말 한 마디는 2~3년 뒤의 연구 트렌드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그간 수십만 개 클론의 암세포에 일대일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지나치게 소모됐던 연구 자원이, 조기진단을 위한 기술력 확보에 더 중요하게 이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옥찬영 테라젠이텍스/메드팩토 임상시험본부장(내과 전문의)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1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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