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이미지의 배우 김성령에게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는 당찬 도전이었다. '이대 출신 신여성 주부' 오금희가 성인용품 방판(방문판매)계의 '브레인'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김성령은 이 모든 순간을 열린 마음으로 즐겼다.
"그 전작들이 힘들게 고생했다 보니, 너무 행복하고 선물 같은 작품이었죠. 춘천에 사는 동생이 있는데 그 동네 사우나에서 아주머니들이 '정숙한 세일즈'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우리도 성인용품점에 한 번 가볼까' 그런대요. 그런 반응이 정말 제가 너무 바라는 거였거든요. 여자들이 참 좋아하는구나 싶었고, 50대 남자 시청자수가 이렇게 상승한 게 JTBC 드라마 중 처음이래요. 둘 다 관심이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성인용품 이야기를 더해야 된다고 감독님한테 그랬는데, 여러 스토리를 풀어야 되니까요." (웃음)
드라마를 이끈 건 김성령을 비롯해 배우 김소연·김선영·이세희로 이뤄진 '방판 시스터즈'들의 '케미스트리'였다. 무엇보다 극에서 구심점을 잡아야 했던 김소연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김성령은 후배 김소연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케미'의 중심은 김소연 배우한테 있어요. 소연이를 통해서 정말 선한 영향력의 실체를 봤거든요. 한 사람의 선함이 100여명의 스태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소연이가 너무 배려하고, 열심히 하니까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정말 주인공은 이래야 된다는 그 무게를 느꼈달까요. 주인공 한 사람 기분에 따라서 현장이 힘들어지는 걸 너무 많이 봤는데, 사실 예민할 수 있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에요. 반면에 소연이 같은 배우가 그렇게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도 이번에 느꼈어요."
김성령은 소위 '부잣집 사모님'으로 대변되는 우아하고 고상하면서, 부유한 캐릭터들을 많이 맡아왔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더욱 강하다. '정숙한 세일즈' 초반에는 오금희 역시 그런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방판'으로 삶의 2막을 열어가면서 결말은 전혀 달라졌다. 단순히 여성의 금기시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꿈꾸게 만들었다.
"저 같은 아줌마들 이야기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역할로 따지면 저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영화에서는 망가지는 연기도 좀 했었는데, 드라마에서는 화려하고 예쁜 역할로만 캐스팅이 들어오니까, 이런 역할이 반갑더라고요. 망설일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죠. 코미디도 잘 맞는 거 같아요. 막상 연기를 하면 어려운데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서 잘하는 거 같아요. (웃음) 금희가 결단을 내리고, 세상 밖으로 나와서 '방판'을 해보니까 재미있거든요. 다시 옛날로는 못 돌아가죠. 용기 있는 여자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집에만 있는 게 아니고, 제 나이에도 뭔가 도전해서 재미를 찾고,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소품으로 등장한 각종 성인용품이나 속옷이 민망하지는 않았는지 묻자 오히려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는 답이 나왔다. 첫 '방판' 장면을 무려 12시간 가량 찍었다는 전언이다. 다만 15세 관람가인 드라마 특성 상, 모든 내용들이 대놓고 나오긴 어려웠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김성령은 유명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을 패러디하면서 일명 '성령 스톤'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장에 소품이 깔려 있으면 막 가서 구경하고 재미있었죠. 보기보다 예뻐서 옛날 거 맞냐고, 진짜 수다가 끝이 없었어요. 첫 방판 장면을 12시간인가 찍어서 지칠 만도 했는데요. (웃음) 저야 놀랄 게 없죠. 이미 다 아는데. 다만 이게 방송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 '삐' 처리가 되어서 나오더라고요. 그게 아쉬웠어요. 그러다 '원초적 본능' 패러디를 하게 됐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봐야 재미있지, 요즘 시청자들이 알까 싶어서 걱정이 됐어요. 감독님한테도 그런 걱정을 이야기했고요. 이런 저런 고민이 있었는데 그냥 했어요."
슬립을 입는 등 여러 파격적인 장면을 위해 평소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60대를 목전에 둔 김성령은 이미 '자기 관리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꾸준히,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 김성령과 운동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샤론 스톤 패러디도 그렇고, 그런 장면을 위해서 단기로 레이저 관리도 받으면서 돈을 많이 들였죠. 살도 1㎏ 정도 뺀 거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효과는 없더라고요.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있는데 한 가지만 해서는 안돼요. 시간, 노력, 돈을 다 써야 시너지가 확 올라오거든요. 할 수 있는 걸 다하는 거죠. 저는 촬영이 없을 때도 운동, 마사지 이런 스케줄들이 꽉 차있어요. 헬스랑 마이크로스튜디오를 하는데 마이크로스튜디오의 경우는 그 선생님과 10년 이상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안 해 본 운동이 없긴 해요. 아침에 운동갈 때 가기 싫은 마음은 똑같아도 이미 습관이 됐고, 약속이니까 지켜야 되잖아요. 또 가서 운동하고 나면 너무 행복하거든요. '무쇠소녀단'을 보면서 나도 수영이나 사이클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해양 스포츠도 재밌거든요."
대중에 보여지는 이미지와 달리, 김성령은 일단 행동부터 나가는 주의다. 늘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 '대가족'에서 만두 맛집의 가게 매니저로 활약하다가도, 또 내년 여름에는 연구원으로 총 액션을 거침 없이 선사할 예정이다.
"저는 친구들이 뭐가 좋다고 하면 바로 찾아보고 전화해요. 행동파인 거죠. 겉으로는 우아해 보여도 정말 하인 기질이 있어요. 화장실에서 물 뿌리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대걸레가 물이 질질 떨어지니까 제가 다 손으로 짰거든요. 그게 제 생활습관이에요. 더러운 것도 잘 만지고요. 그런데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그러니까 웃겼나 보더라고요. 의외로 저는 도전을 좋아하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크게 두려움이 없는 김성령도 한 때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후원하는 연예인으로 거론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당시 제기된 의혹에 대해 김성령은 법적 대응 등 적극적인 부인에 나섰지만 애꿎은 소문에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너무 허무맹랑해서 사실 타격감은 없었거든요. 정말 그럴 건더기가 1도 없었어요. 어디서 (조국 대표를) 마주치면 민망하겠다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였죠. 굳이 왜 이야기가 나왔는지 따지면 한 아파트 주민이었던 거라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이슈가 되더라고요. 거기에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생각보다 빨리 이야기가 없어진 게, 뭐가 있어야 파헤치죠. 오히려 살면서 제가 잘못한 게 있었나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혹은 제가 무엇인가 자만해서 하나님이 진정하란 의미였나 싶기도 하고요.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25년 넘게 연기 생활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김성령을 찾는 작품들이 많다. 수많은 별들이 떴다가 지는 연예계에서 이 정도면 상당한 노하우의 소유자다. 그래도 김성령은 쉽게 안주할 생각이 없다.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로, 금희 못지 않게 자신의 길을 닦아갈 뿐이다.
"성격이 거절을 잘 못하고, 출연료도 싸요. (웃음) '팩트'는 그러니까 캐스팅 제의가 많은 거예요. 작년에 유튜브 예능에 나가서 작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일을 쉬고 싶다고 했더니 진짜 다 없어졌어요. 이렇게 일이 없어지는구나 싶다가, '정숙한 세일즈'를 만났고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될 거 같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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