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시장에서 패퇴하면서 위기론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삼성이 금방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뒤쫓을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 많았다. 그런데 엔비디아의 납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 대신 들려온 것은 올해 5월 경계현 디에스(DS·반도체)부문장의 갑작스러운 경질이었다. 반도체 설계와 고객 서비스에 대한 이해 부족, 세부 사항까지 통제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 따른 복지부동, 수요를 제대로 예측 못한 미국 파운드리 공장 과잉투자 등 그동안 쌓여온 문제가 드러났다.
그런데 삼성의 선택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데 맞춰졌다. 퇴임 수순을 밟아가던 전영현 삼성에스디아이(SDI) 부회장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메모리사업부장을 지낸 전영현 부회장은 조직 문화를 바꾼다며 1980년대 만들어진 ‘삼성 반도체인의 신조’를 소환했다.
사실 멈춰져 있던 것은 삼성의 경영이었다. ‘관리의 삼성’은 그동안 삼성 경영을 대표하는 키워드였다. 옛 회장 비서실(이후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사업지원티에프(TF)로 이름이 바뀜)의 수장은 재무 출신이 맡고, 사업부문은 엔지니어 출신이 맡아 인사와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삼성의 성공 방식이었다.
이재용 회장도 이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10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쓰러져 경영 주도권을 잡은 뒤에도, 그가 2017년 뇌물 제공 혐의로 유죄를 받아 경영 일선을 떠난 뒤에도, 그리고 2년 전 회장 직위에 오른 뒤에도 이 구조는 바뀐 적이 없다. 여전히 한쪽은 이학수-최지성에 이어 정현호 사업지원티에프장이 이끌고 있고, 또 한쪽은 엔지니어 출신 권오현-김기남-경계현에 이어 전영현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71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