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중 인체 실험을 자행한 전범으로 아우슈비츠의 요제프 멩겔레와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를 꼽는다.
하지만 스탈린이 자행한 생체 실험은 위의 두 사례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은 편이다.
스탈린이 자행한 생체 실험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대숙청으로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이었으며, 일부 전쟁 포로들도 포함되었다.
소련의 요제프 멩겔레, 그레고리 마이라노프스키(Grigory Moiseevich Mairanovsky)
스탈린의 생체 실험을 실질적으로 감독한 것은 NKVD의 생화학자, 마이라노프스키였다.
이러한 생체 실험은 NKVD의 베리야에 의해, 최종적으로 스탈린에 의해 허가되었으며, 희생자들은 각종 치명적인 독극물에 노출되어 어떻게 죽어가는지 '실험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실험의 목표는 더 효율적인 독극물을 찾아내는 것이었으며, 무색무취한 독극물을 개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Vadim J. Birstein이 2004년에 저술한 <<The Perversion Of Knowledge: The True Story of Soviet Science.>>에 실린 목격자들의 증언을 따르면, 각종 독극물을 주입받은 피해자들은 신체가 변형되고, 키가 작아지고, 빠르게 약해졌으며, 몸부림이 잦아들고 15분 이내에 사망했다.
Mikhail Filimonov의 증언에 따르면, NKVD의 고위 관료인 Pavel Sudoplatov와 Nahum Eitingon 은 소련이 개발한 모든 독극물에 대해 '인체 실험'을 거친 후에야 독극물의 실전 배치를 허용했다.
소련은 이러한 생체 실험을 통해 최종적으로 C2라고 불리는 독극물을 개발해낸다.
인체 실험 외에도 마이라노프스키는 Sudoplatov의 감독 하에 수많은 정치범들을 독극물로 처형했는데, 이는 '위험 분자'들을 임의적으로 처형한 일본의 731부대와도 유사하다.
1953년 8월 28일, 스탈린 사후 체포된 베리야는 이에 대해 "내가 마이라노프스키에게 생체 실험을 명령한 것은 맞지만, (스탈린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 생각은 아니었다." 라는 증언을 남겼다.
소련의 생체실험은 아우슈비츠와 731부대와는 두 가지 부분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사람 몸을 가지고 장난친 수준'의 데이터만을 뽑아냈던 뒤의 두 사례와는 달리, 스탈린은 생체실험이라는 반인륜적인 수단을 통해 독극물 개발이라는 목표만큼은 매우 효과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재판대에 올라 처벌받았거나, 적어도 숨어 살아야 했던 나치의 전범들과는 달리, 이 실험의 주모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주범인 마이라노프스키조차 일절 처벌을 받지 않았고, 정치 투쟁에 휘말려 10년간의 징역을 살고 나온 후에도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소련의 생화학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