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지배계급이 대학이나 신문사의 문을 닫으면서까지 지조를 지켜야 했을까. 친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친일파 아닌 사람은 화전민이나 노예였을 것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7일 주최한 국제포럼에 국내 발제자로 나선 신복룡(82) 전 건국대 석좌교수(정치학)는 일제 강점기 만연했던 친일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지배계급의 친일 부역을 두둔하는 발언으로까지 나아갔다. 각국의 과거사 진실 규명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부적절한 발제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서울 중구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포럼에는 폴란드와 네덜란드에서도 참석해 각국의 ’과거사 진실규명의 성과’를 공유했다. 마렉 한데렉 폴란드 국립추모연구소 연구원은 77명의 검사와 수십명의 역사학자로 구성된 국가범죄기소위원회가 독일·소련 점령기의 집단살해 행위를 어떻게 조사하고 처벌했는지를, 울라지슬라우 벨라부사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책임연구원은 국가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유럽 국가마다 ‘기억법’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소개했다. 모두 반인도적 범죄를 조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과거사 정리’를 주제로 한 신 전 교수의 발제 제목은 ‘대한민국 과거사 정리의 나아갈 방향-한국사회의 친일논쟁, 그 떨쳐야 할 업장(業障, karma)’이었다. 신 교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역에 대한 변명’이라는 화두를 꺼냈는데 망국과 일제 식민 지배 과정에서 한국인의 책임도 돌아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신 전 교수는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 5적과 합방 7적들이 역사에 지은 죄를 사면받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망국의 원인의 모든 것은 아니다”라며 “고문 경찰 김태석과 노덕술을 잡아다가 정죄하고 이광수나 최남선에게 낙인을 찍는 것으로 친일이 청산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신 전 교수는 또 패널토론에서 “친일 청산은 많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의 친일청산은 생업이 되는 게 아닌가. 친일청산에 목을 걸고 사는 생업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며 친일 청산운동의 주체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신 전 교수의 발제에 이어 패널토론을 진행한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발제”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2009년 12월부터 1기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맡아 과거사 정리작업을 파행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지금 한국 진실화해위의 쟁점은 민간인 학살 등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의 인권침해인데, 많은 관련 연구자를 놔두고 친일을 옹호하는 편향된 입장을 가진 이에게 발제를 맡겼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막연하게 ‘친일이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식’의 발제도 심각한 주관주의적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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