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5일 광주 전남도청 상활실
미국이 우릴 도와주러온데요!! 항공모함이 온데요!!
형!!형!! 미국이 우릴 도와주러 온데요!!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
진짜야????
네 잘됐죠?형??!!!
창수야!!!!
우리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일동 환호를 외치며) 이야!! 박남선 실장 : (동료들에게) 수고했어요!!
당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미국을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침략으로부터 구해준 은인의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실제로 당시 항공모함 2척이 부산과 진해로 동하고 있었고 이소식에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전두환을 압박하여 광주시민들에게 도움을 줄거라고 믿고있었다고함
하지만 항공모함은 광주시민들이 아닌 북한견제를 위해 왔던거였고 상황은 광주시민들의 바램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음
영원한 우방 미국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도와주러 올것이라고 철석깥이 믿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 미국이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과 신군부를 지지하고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던 시절이였다
5·18 당시 광주 시민은 미국에 잠시 환호했다. 1980년 5월 말께 미군이 필리핀에 있던 항공모함 코럴시호와 일본에 있던 미드웨이호를 각각 진해와 부산에 전진배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의 반인권적 시위 진압 상황을 개선하는 데 미군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입장은 그 기대와 전혀 달랐다. 미국의 항공모함 파견은 ‘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계엄군이 광주에서 자행한 폭력에 ‘동조’ 또는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1996년 미국의 팀 샤록 ‘저널 오브 커머스’ 기자가 12·12 사태,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극비 문서 2000여건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팀 샤록이 공개한 자료에는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국은 광주항쟁 이후 극비문서가 공개되기 전 까지 일관되게 “한국의 특전사 부대가 광주에 배치된 것을 사전에 몰랐으며, 그들이 광주에서 취한 행동에 대한 책임도 없었다”고 말해왔다.
미국, 광주항쟁 진압 위한 군 이동 사실 미리 알고 있어
출처 : 시사저널(https://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