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번 판결에 열광하는지는 판사들이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에 사형 판결이 내려지자 열광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던 한 뉴스 화면에서 이런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지난 2일 종영한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지옥판사)에서다.
‘지옥판사’는 죽은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몸에 들어간 악마 유스티티아가 용서받지 못한 죄인 20명을 지옥으로 보내는 과정을 그렸다. 지옥으로 보낼 살인자들의 재판을 맡은 빛나는 이들에게 ‘다만’이란 말 뒤에 감형 사유를 덧붙여 풀어주고, 피해자와 똑같은 방식의 고통을 겪게 한 뒤 지옥으로 보내버린다.
빛나의 판결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들이 이어지는 현실에 염증을 느낀 화면 안팎의 시민들은 연쇄살인마 J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앞서 언급한 대목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대사였다. ‘지옥판사’가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지옥판사’는 지난 2일 최고 시청률(13.6%)보다 소폭 떨어진 11.9%로 마지막회 방송을 마쳤다. 동시간대 방영된 ‘정년이’의 영향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진 못한 채 마무리됐지만, 시청자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권선징악 전개에 환호하며 시즌2 제작에 대한 바람도 드러내고 있다.
시청자들이 ‘지옥판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14회차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아동학대, 교제폭력, 가정폭력,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여러 폭력과 문제들을 주인공이 하나씩 ‘대리 복수’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처벌의 장면을 불필요하게 길게 묘사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시청자의 카타르시스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적제재를 합리화하거나 이에 무뎌지게 만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3일 “현실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아서 답답함을 느끼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그때마다 기화하는 분노라는 건 정말 바꿔야 하는 문제에 둔감해지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문제의식은 날아가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콘텐츠를 통해 (그런 감정을) 해소하려는 현상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지옥판사’는 이 같은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를 13, 14화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연쇄살인마 J로 밝혀진 정태규(이규한)의 재판 장면에서 빛나는 “결국 그들(유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죽음 같은 삶을 살아온 피해 유가족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피해자와 피해 유가족이 용서하지 않는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형을 선고한다.
연쇄살인 피해자의 유가족인 한다온(김재영)이 정태규를 죽이지 않고 체포해 사법적 판단을 받게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복수심에 가득 찬 사적제재가 아닌 법에 따른 공정하고 합당한 처벌이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나 메시지가 정당하다 해서 거기로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과잉된 연출이 타당해질 수는 없다”며 “작가와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드라마의 상황을 빌려 사법 체계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건 법치주의 국가에선 선을 넘은 문제라고 본다”고 짚었다.
https://naver.me/5uIF8i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