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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40대 직장인은 “우리 같은 사람을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신발 밑창에 딱 붙어서 승진자를 찾을 때도, 희망퇴직자를 찾을 때도 눈에 띄지 않고 싶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4050세대에만 있는 건 아니다. 2030대인 Z세대도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승진 회피 및 지연)’을 한다. 다만 4050세대의 임원 포기 이유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임포자·승포자(임원·승진 포기자)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임원 안달면 60세까지 월급…승진 준비할 시간에 재테크”
◆가늘고 길게 정년까지=대형 건설사에 다니는 A씨(54)는 ‘부장급 사원’이다. 비슷한 연배의 임원도 많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A씨는 “임원을 안 달면 60세 정년까지 월급이 보장된다”며 “임원이 되면 책임져야 할 게 많아져 부담스럽고, 이 나이에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도 피곤해서 싫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에선 ‘만년 차장’ ‘만년 부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임원 승진에 실패한 루저라는 건 옛말, 후배가 임원을 달고 상사가 되면 굴욕적으로 여기고 퇴사하는 풍경도 모두 옛날 일이다. 오히려 자기 의지로 임원 되기를 거부하는 임포자, 승진을 포기하는 승포자가 늘고 있다. ‘임원은 임시직원’이라는 말처럼 매년 재계약 여부에 마음을 졸이느니, 낮은 곳에서 정년까지 조용히 다니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최근 대기업 임원 연령이 낮아지면서 40대 팀장급이 되면 임원 승진 가능성이 대략 결정된다. 에너지업계 대기업에서 현재 팀장(차장급)을 맡은 B씨(45)는 ‘가늘고 길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게 꿈이다. 그는 “40대 팀장이면 임원 후보군이 될 수 있는데, 요즘 팀장 중엔 임원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60%, 정년까지 다니고 싶은 사람이 40% 정도”라며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애의 대학 진학·취직·결혼까지 생각하면 60세 이후에도 돈을 벌어야 해 최대한 오래 일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임원의 인기가 떨어진 또 하나의 이유로 ‘학습효과’를 꼽는다. 유능한 임원도 실적 악화 영향으로 예상보다 빨리 자리에서 잘리거나, 예전 임원이 누리던 혜택이 대폭 축소되는 것을 보며 ‘나도 임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줄었다는 해석이다.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는 “임원이 되고 나면 ‘아름다운 퇴장’을 하기 어렵다는 걸 보고, 직원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라며 “임원 임기를 최소 3년은 보장해 줘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고, 그런 임원을 바라보는 직원에게 동기부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도적 언보싱’ 왜=기업 인사담당자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한 10대 그룹 인사담당자는 “4050세대에선 고용 안정성을 위해, 2030세대에선 워라밸을 위해 승진을 기피하는 것 같다”며 “회사 성장이 둔화하다 보니 승진 적체가 심하고 상위 직책으로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냥 편하게 회사 다니자’고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젊은 직원의 보직 기피 현상이다. 국내 한 정보기술(IT) 업체 인사담당자는 “글로벌 기업에서 해외법인 근무 이력은 승진 코스로 꼽히는데, 4050세대는 자녀의 학업·부모 부양 등을 이유로 해외 근무를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2030세대는 자기 계발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직책 팀장 자리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