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나는 바로 서점 앱에 접속해 그의 책들을 주문했다. 나와 같은 이들이 많았는지, 책은 모두 예약 판매가 걸려 배송이 한참이나 밀려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그의 책을 구입하는 허영심 덩어리’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의 이런 행동에는 역사가 있다.
나는 시기별로 어떤 콘셉트에 따라 살기를 즐겼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중학교 시절에 ‘조선왕조실록’을 끼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국사 과목을 좋아하는 콘셉트를 지키기 위한 세부 설정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기자’ 콘셉트에 빠져 주렁주렁한 야전식 점퍼를 입고 다니며 한쪽 어깨엔 카메라 가방을 매번 메고 다녔다. 지금 와 고백하자면 사실 그 가방 안에 카메라가 없을 때도 많았다.
최근 연출하고 있는 콘셉트는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설정이다. 이는 내가 유튜브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얼굴이 조금씩 알려져,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차 알은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시기에 생겼다.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길에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키득거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나눴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민망한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나를 발견했을 때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보는 모습보다는 책이라도 읽는 모습이 낫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부터 내 나름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매번 가방에 책을 들고 다니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에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책 사는 걸 즐기게 됐다. 출판계를 살리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 새 책, 중고 책, 가리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독립 서점을 들러 책을 사는 게 루틴이 되었다. 사놓은 책을 어쩔 도리 없이 읽다 보니 빠른 속도는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갔다.
꾸준히 허구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나 같은 이를 인터넷에서는 ‘컨셉질’이란 단어로 간단히 정의할 것이다.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독서하는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하며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읽는 책을 사진이나 기록으로 공유하거나, 독서 모임 경험을 공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주위에 ‘책 읽는 모습’을 노출하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으니 ‘텍스트힙’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 현상을 비판하는 시각은 존재한다. 단순히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일 뿐이라는 것. ‘독서하는 나’를 보이기 위한 패션 아이템이나 소셜미디어 인증용으로서만 책을 이용한다는 이유였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독서에는 성역도, 정답도 없다. 콘셉트를 지키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내가 있다. 엉뚱한 이유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나는 꾸준히 누군가의 독자가 되고, 한 업계를 지키는 소비자가 된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국사를 좋아하는 설정을 지키기 위해 국사 성적을 늘 상위권으로 유지했으며, 기자 이미지 고수를 위해 논문을 끼고 살았던 덕분에 그해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는 몇 년간 전국 독립 영화관에 상영될 수 있었다. 일생 동안 나의 ‘허영’은 나를 키우고 발전시켰다.
불순한 의도로 책에 접근했지만, 독서는 어느새 나의 희미한 습관이 되었다. 가을을 맞이해 잔뜩 주문해 놓은 책들이 책장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누가 허영이라고 하든지 말든지,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간다. 늘 그렇듯 시작은 희미해지고 결과는 남는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0/30/LSDTPZSTYJD5HJJBAGZP2HDB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