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법대로 판결했을 뿐이에요. 애꿎은 사람 원망하지 말고 이 나라 법이나 원망하세요.” 판사 강빛나(박신혜)는 솜방망이 처벌을 나무라는 목소리에 시큰둥하게 답한다.
“바이 알 인페르노(Vai all’inferno·지옥으로 떨어져).” 얼마 뒤, 강빛나의 몸을 빌린 악마 유스티티아는 죄인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며 잔혹한 고통을 느끼게 한 뒤 지옥으로 보낸다.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 죄인을 풀어준 뒤, 죄인 앞에 나타나 죄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다.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다음달 2일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판사 몸에 들어간 악마의 사적 제재라는 소재를 활용해 대중의 눈높이에 못 미친 사법체계를 꼬집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형벌을 내리는 게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범죄 장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강빛나 몸에 들어간 악마 유스티티아가 열혈 형사 한다온(김재영)과 함께 죄인을 처단하며 진정한 판사로 거듭나는 판타지 드라마다. 유스티티아는 지옥의 살인자 전담 재판관인데, 살인자가 아닌 이를 지옥으로 보내는 잘못을 저지른 탓에 인간계로 퇴출된다. 그는 강빛나의 몸에 들어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도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 죄인 2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을 받는다. 그는 판사라는 신분을 활용해 교제 폭력, 아동학대, 일가족 살해를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는 이들을 구속시키지 않고 풀어준다. 이후 그들을 찾아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가혹하게 죽인다.
인기 비결은 역지사지의 통쾌함이다. 극본을 쓴 조이수 작가는 “강빛나는 무자비하게 죄인들을 처단한다. 그전에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죄지은 자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과 닮은꼴 사건을 보여주고 현실과 다르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처단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이런 효과가 반영된 듯 1회 6.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출발한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하더니 최신 회차인 12회는 11.7%를 기록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4.3%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교제 폭력, 아동학대 등 범죄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드라마에선 이런 행위로 고통받는 피해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럼으로써 죄인을 처단할 때의 통쾌함이 배가될 수는 있지만, 비슷한 고통을 경험한 이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폭력의 실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직접 보여주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듯 보이지만, 고발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잔인하다”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간접 경험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오티티(OTT)가 심의에서 자유롭다 보니 표현 수위가 매우 세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영향으로 지상파에서도 폭력적인 상황 연출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짚었다.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미흡한 사법체계 풍자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의견도 있지만,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보다는 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남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답답함을 풀어주는 형식이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환호한다고 해서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는지, 드라마의 폭력성이 커짐으로 인해 우리 사회 폭력성이 더욱 커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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