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세곡동 그린벨트 해제 유력 토지 5213필지 전수조사…민간이 절반 독차지
총 공시가 9조4448억…그린벨트 매매 47%는 '지분 쪼개기'
8·8 부동산 대책으로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내곡동·세곡동 일대 토지의 50% 안팎을 민간이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거래허가제와 농지법상 규제 등도 민간의 토지 거래를 막지 못한 모양새다. 이들은 그린벨트 해제에 따라 필연적으로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가의 보도'로 여겨지는 그린벨트 해제가 오히려 사익 추구에 이용될 것이라고 우려되는 배경이다.
내곡동·세곡동은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불리는 땅이다. 강남권에 있다 보니 그린벨트 해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땅값이 요동치곤 한다. 또 산지가 대부분이라 개발이 힘든 강북권을 제외하면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눈 감고 가리키면 10번 중 4번은 '사유지'
전체 5213필지 중 개인이 소유한 필지는 외국인을 포함해 2255필지로 조사됐다. 비율로 치면 43.3%다. 또 주식회사·재단법인·종교단체·종중·비법인사단 등 민간단체는 242필지(4.6%)를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개인 또는 법인이 신탁사에 맡긴 토지 167필지(3.2%)를 포함하면, 민간이 보유한 땅은 총 2641필지로 집계된다. 절반이 다소 넘는 51.1%다. 나머지는 정부와 서울시, 강남구·서초구, SH공사 등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었다.
땅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내곡동·세곡동 전체 토지 1076만1278㎡ 중 민간 소유분은 415만1229㎡로 집계됐다. 약 38.6%다. 내곡동·세곡동 땅을 아무데나 가리키면 대략 10번 중 4번은 사유지를 고르게 되는 셈이다. 민간 소유 비중은 개인·외국인 278만3294㎡(25.9%), 법인 등 민간단체 75만5200㎡(7.0%), 신탁사 61만2735㎡(5.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민간의 그린벨트 소유 목적을 모두 투기 등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일례로 종중이 대대로 보유하고 있는 조상 땅이나 재단법인이 공익사업 목적으로 취득한 땅은 투기와 거리가 멀다. 개인이 상속받은 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조사 대상 중 수상한 흔적이 발견되는 땅이 있었다.
'1·10 주택대책' 9일 뒤 230억 세곡동 임야 대거 분할돼
세곡동에 있는 5만5000㎡ 상당의 임야 한 필지는 공시지가가 230억원이다. 민간 소유 비(非)대지 중 최고가다. 그린벨트이자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이곳은 2000년대 들어 한때 지분권이 최대 61개로 갈라졌다. 그러다 모든 지분이 올 1월19일 현재의 소유주 5명에게 귀속됐다. 지분 이전 사유와 주소지 등을 비교해 봤을 때 모두 3대에 걸친 일가로 추정된다.
지분 이전 과정에서는 수차례 공유물 분할등기가 이뤄졌다. 본인 몫의 지분을 공고히 한 것인데, 공교로운 건 시점이다. 9일 전에 정부가 '1·10 주택대책'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밝힌 것이다. 개발계획 발표 직후 소위 '지분 쪼개기'를 감행한 셈이다.
이 땅은 임야지만 산이 아닌 평지에 있고, 주택지구와 500m 정도 떨어져 있어 개발 가능성이 큰 곳으로 꼽힌다. 다만 소유자 입장에서 걸림돌은 상증세법에 따라 추후 개발사업 등에 따른 시세차익에 대해서도 증여세가 부과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세차익을 얻는 시점이 토지 취득일로부터 5년이 지난 뒤라면 증여세는 면제된다.
이처럼 지분 쪼개기는 절세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기획부동산의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특정 업체가 그린벨트 또는 개발가치가 낮은 산지를 사들인 뒤 웃돈을 얹어 지분을 분할 판매하는 것이다. 한 수도권 지방토지수용위원회 위원(변호사)은 "필지 분할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까다롭지만 지분 분할은 계약서에 기재만 하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다"며 "개발 예정지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 분양권 등을 얻을 수 있으니 개발 직전의 지분 매매는 투기 목적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분 쪼개기 정황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시사저널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2020년 1월부터 올 10월까지 약 5년간 내곡동·세곡동 그린벨트 지역의 거래 내역을 살펴봤다. 총 거래 건수는 169건이었다. 이 가운데 올 들어 내곡동 6건과 세곡동 3건 등 9건이 지분 단위로 매매됐다. 이를 포함한 지분 매매는 총 80건이다. 전체 그린벨트 거래의 47.3%다. 절반 가까이가 지분 쪼개기로 거래됐다는 뜻이다. 특히 내곡동 산지의 한 그린벨트 임야는 지난해 5월30일 하루에만 20번에 걸쳐 지분이 직거래됐다.
그린벨트 둘러싼 찬반…"사회적 비용 증가" "오히려 비용 감소"
이 와중에 정부는 주택 5만호 공급을 책임질 그린벨트 해제 후보지를 11월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따른 후속 조치다. 해당 방안의 골자는 "향후 6년 간 서울과 수도권에 42만7000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 중 그린벨트 해제로 공급되는 주택은 총 8만호다. 이전부터 예정돼 있던 기존 주택 공급분 21만7000호를 제외하면, 신규 공급분(21만호)의 40%에 달한다.
이 정도의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는 2012년 이명박(MB) 정부 이후 12년 만이다. 김윤재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량이 MB 때보다는 적을 것"이라며 "해제 후 실제 주택 공급까지도 오래 걸리다 보니 정부가 노리는 가격 안정화 효과는커녕 부작용이 더 클 것 같다"고 내다봤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도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난데 서울에 그린벨트가 풀리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마저 저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도권 내곽이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사람들이 가까운 땅을 놔두고 먼 곳에 가서 살게 됐다"며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 길어져 비효율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또 이 교수는 "서울 집값 급등은 최근 문제가 아니라 박원순 시장 때 정비 사업 포기로 인한 주택 공급 위축이 원인"이라며 "가까운 곳에 신규 택지를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성윤·김현지·정윤경·강윤서 niceball@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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