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온 계절근로자 ㄱ(32)씨가 지난 5월 강원 영월군에서 하루 8시간씩 농사일을 하고 받은 첫 월급은 35만원이 전부였다. 한국에 오기 전 서명한 근로계약서에 적힌 액수(206만원)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206만원 중 135만원은 이름도 처음 듣는 한국인 ㄴ씨에게 돌아갔다. ㄴ씨는 정부의 계절근로자 지침상 금지된 ‘브로커’였다. 믿었던 군청 산하기관 직원은 ㄴ씨에게 주는 “중개수수료”라며 당연한 일인 듯 말했다.
정부가 농어촌 일손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는 가운데, 브로커가 개입해 중개수수료를 떼고 임금을 중간 착취하거나 ‘이탈 방지’ 명목으로 여권과 통장을 빼앗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인신매매방지법은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뿐만 아니라, ‘성매매와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등을 목적으로 한 폭행, 협박 등 착취 행위’도 인신매매로 본다. ㄱ씨는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난 11일 정부로부터 ‘인신매매 피해자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이런 계절노동자 착취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한국에 들어와 농협에 고용된 필리핀 이주노동자 ㄷ(29)씨도 지난 5월 입국하자마자 매달 월급 중 62만원을 브로커 계좌로 자동이체하는 신청서를 억지로 작성해야 했다. ‘송출 수수료’라고 했다. 두 달간 임금을 강탈당한 이후로 ㄷ씨가 이를 거부하자 또 다른 브로커 ㄹ씨는 ‘필리핀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참다못한 ㄷ씨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동료들과 사업장에서 이탈하자 ‘추적’이 시작됐다. 농협의 통역인은 ㄹ씨와 한편이 되어 ㄷ씨와 동료들에게 500만원의 현상금까지 걸어 ‘사적 수배령’을 내렸고, 심지어 ㄷ씨 등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허위 고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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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근로자가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브로커 같은 중개인이 끼어드는 건 정부 기준상 금지돼 있다. 법무부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기본계획’에는 인력송출업체 등이 개입해 노동자와 이중계약을 체결하거나, 수수료(관리비용) 명목으로 높은 비용을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계절근로자를 모집하는 지자체는 공공연하게 노동자 모집·선정·송출 과정을 브로커에게 위임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들은 인신매매 형태 노동 착취를 막으려면 계절근로자 제도를 법으로 만들어 정부 차원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한겨레에 “일부 기초 지자체들이 브로커 개입을 조장한 정황이 보인다”며 “법무부 운영지침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법제화하거나 전담 기관을 설치하는 등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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