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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한강 열풍 속, 노무현 정부의 '창의한국'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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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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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퓨처] 20년 지난 지금 봐도 놀라운 문화비전


한국 현대문학의 다양한 노력의 연장선 속 한강


사실 한강 작가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도 2016년 맨부커상(영국), 2023년 메디치 외국문학상(프랑스) 등 해외 유명 문학상을 꾸준히 받으며 작가로서의 국제적 위상이 꾸준히 높아져 왔던 작가였습니다. 역사와 개인의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온 작가로서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또한 한강 작가의 수상이 감동적인 것은 이것이 평지돌출로 갑자기 뛰어난 한 개인이 등장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1917년에 쓰인 춘원 이광수의 <무정>을 시작으로 하여, 100여 년이 넘는 한국 현대문학의 다양한 노력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현대문학은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 군사독재와 이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라는 굴곡진 역사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고뇌하고, 반성과 성찰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도 환경 문제, 노동 문제, 성평등 문제,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테마에 대해 응전하며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이번 수상은 작가 개인의 놀라운 예술 성취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 문학이 꾸준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현실 문제에 대해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간 한국 예술가들이 꽤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와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지만,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한국 예술이 국제 사회에서 갖는 위상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세계 질서에서 갖는 위상이 다른 국가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20세기 중반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의 질적 성장이 엄청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과 같은 기초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대중음악, 최근에는 웹툰,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콘텐츠 분야에서도 그 국제 위상이 국민이 체감하는 것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지금 봐도 놀라운 노무현 정부의 '창의한국'

▲  2004년 발간된 <창의한국> 중 일부.
ⓒ 문화관광부


이런 문화예술의 활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이뤄져 온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온 게 사실입니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산업을 진흥하기 시작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문화재정 1%를 달성하며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문화적 다원성을 통한 사회 창의력의 증대가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관점을 담은 문화정책비전서인 '창의한국'을 야심차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4년 발표된 '창의한국'은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놀라운, 혁신적인 정책 비전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대부분 자신의 임기 동안 수행할 문화 정책 계획 같은 걸 발표하긴 하지만, 그 계획에 참여하는 이들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실제로는 거의 관료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하였던 '창의한국'은 문화예술 현장과 관련 학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을 망라해 참여시켰고, 단기적인 임기 내 계획이 아닌 10년, 20년을 전망하는 정책비전으로서 풍부한 전망과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그 이후에 숱하게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여전히 정부 문화정책의 기본 방향은 '창의한국'의 자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를 봅시다, 괜찮습니까

최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달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을 통한 '제2의 한강 만들기'를 준비하겠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주된 내용을 보면 한국문학번역 출판지원 등에 대한 예산 증액, 한국 문학 해외 홍보 관련 예산 증액, 우수 문학도서 지원 확대 등입니다.

물론 이런 사업들은 모두 어느 정도 필요한 정책사업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최근 문체부 예산에서 문화예술의 저변을 떠받치고 있던 각종 정책사업에 대한 예산 삭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버랩됐기 때문입니다.

당장 떠오르는 거 몇 개만 열거해보겠습니다. 내년도 문체부 예산 중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의 72%가 삭감됐습니다. 2023년 결산 기준으로 476억 원에 달했던 지역문화진흥 정책 예산은 2024년에 22억 원으로 줄었다가 다시 16억 원으로 감소했습니다. 전체 문체부 예산 규모는 큰 변동이 없거나 약간 줄어든 정도이지만, 문화예술교육과 지역문화 등과 같이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드러낼 수는 없으나 사회의 문화적 저변을 만드는 지출은 줄어들었습니다. 시설 건립과 같은 굵직한 국책사업들이 그것을 흡수하는 형국입니다.


사실 현 정부 이전에도, 문화정책 분야에서 정권을 막론하고 자주 비판 받아온 점이 '잘 되는 것을 중점적으로 밀어 준다'는 식의, 소위 '스타 프로젝트' 방식의 진흥정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분야에 따라 이런 방식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때때로 이런 스타 프로젝트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스타 프로젝트 못지않게 저변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예술가를 홍보하고 알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그런 예술이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는 향유자와 매개자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의 문화정책에서는 지나치게 '스타 프로젝트' 정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문화정책비전 '창의한국'을 현재 시각으로 다시 읽어보면, 상당히 많은 시대적 한계를 느낍니다. 그만큼 사회적 환경과 문화예술의 여건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비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 문화예술분야를 생태계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완전히 별개의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점과 점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문화예술의 세계입니다. 당장 '제2의 OO' 만들기보다는, 문화생태계 전반의 건강에 대한 진단과 전망 제시가 더 시급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염신규씨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염신규


https://naver.me/GL8NSr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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