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을 들은 교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 소문을 접한 교수가 “사색”이 돼 동료 교수들에게 달려갔다. 충격이 소문을 “당구공처럼” 쳐냈다. 공식 발표 전 소문으로 전해진 학교의 계획이 “공이 공을 때리듯” 교수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울산대학교(울산 남구 무거동)가 중앙도서관 장서를 폐기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6월 학내에 알려졌다. 폐기 자체는 충격이 아니었다. 전국의 대학들은 매년 일정량(도서관법 시행령 ‘소장 장서의 7% 이내’)의 책들을 폐기해왔고 울산대(보통 1~2만권)도 그랬다.
충격은 규모 때문이었다. 45만권이란 숫자가 언급됐다. 학교 전체 장서가 92만권이었다. “책의 절반을 버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교수들 입에선 “헉 하고 탄성이 먼저 나왔”다. “전대미문의 숫자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시적으로 들리기도 했”(안동섭 철학·상담학과 교수)다.
인문대 교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소문인지 정해진 방침인지부터 확인했다. 6월23일 심민수 학장(영문과) 등 교수 3명이 도서관장을 찾아갔다. “사실”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흘 뒤 학교 부총장과 기획처장을 면담했다. ‘총장 최종 결재는 안 났지만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 예산도 확보했다’는 말을 들었다. 명분은 ‘미래형 도서관’ 구축을 위한 “전면 리모델링”이었다. 디지털 열람실, 전시관, 노트북 존, 메이커 스페이스, 카페 등 “학생들의 학습·소통 공간”을 조성하려면 도서관(본관+신관) 본관 전체를 비워야 한다는 논리였다. “학생들의 편의 공간이 부족하고 종이책 이용률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구성원들의 논의 없이 추진되는 대규모 일괄 폐기엔 찬성하기 힘들었”(심민수)다. 학교는 도서관위원회(단과대별 부학장들로 구성)의 검토 절차를 거쳤다고 했으나 “리모델링을 위한 폐기 계획이 언급됐을 뿐 규모는 공유되지 않았”(김미진 부학장·일본어과)다. 6월27일 본부 교무회의에서 심민수 학장은 인문대 교수들을 대표해 ‘장서 폐기 반대’를 밝혔다.
폐기할 책을 뽑는 기준이 ‘대출 실적’이었다. 2010년까지 도서관에 등록된 동양서(국내서 포함) 중 그 뒤 대출이 없거나 2005년까지 등록된 서양서 중 그 뒤 아무도 빌려 본 적 없는 책들이 대상(도서관 관계자 “그동안 대출이 없다면 앞으로도 대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100%이므로 부족한 공간에 계속 비용을 들여 갖고 있기는 부담”)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국회도서관 등에서 컴퓨터로 조회 가능하거나, 구독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로 볼 수 있으면 목록에 넣었다. 이 기준들로 사회과학 10만3474권, 기술과학 9만35권, 문학 6만553권, 역사지리 3만8302권 등 분야별 폐기 도서가 추출됐다.
교수들은 “책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에 항의했다. “대출 횟수나 디지털 대체 여부 등 기능을 중심에 놓으면 이용률이 떨어지는 책들은 가치와 무관하게 소실된다”(노경희 국문과 교수)며 ‘폐기량 달성’을 위한 기준 설정이라고 봤다. ‘본관 서고를 완전히 비운다’는 목표가 장서 절반 정리란 단순 계산을 낳았다는 의심(도서관 쪽 “기준에 따라 선별한 결과 그 분량이 나온 것일 뿐”)이었다.
2차 충격은 목록의 ‘내용’에서 왔다. 교수들이 분석했을 때 ‘총류’(특정 영역에 넣기 어려운 책들) 분야 폐기 도서 3만8282권 중에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전에 출간된 “문화재급” 책 1500여권이 포함돼 있었다. 그 가운덴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잡지 ‘조선’(朝鮮) 50여권(1920~1940)도 있었다. 일제 식민지 정책과 당대 현실을 이해하는 중요 사료로 평가받았다.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서양의 고서들도 분야별 목록마다 발견됐다. 19세기 영국 언론인·작가 찰스 매케이가 쓴 ‘대중의 미망과 광기’(1841년 출간) 1852년 판본도 보였다. 인간의 비이성적 군중심리와 집단사고를 파고든 고전이었다. “그 귀한 책들이 그냥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박정희 국문과 교수)던 인문대 교수들은 다급해졌다. 역할을 나눠 ‘책 구출’에 나섰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644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