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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지옥에서 온 판사’ 잘나가는 이유 [홍성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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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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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 지옥에서 온 악마가 판사의 몸에 들어가서 판결은 대충 하고 악인들을 직접 처단하는 것이 줄거리다. ‘국민사형투표’는 악질 범죄자에 대한 국민투표를 거쳐 직접 사형을 집행하는 내용이고, ‘비질란테’에서는 복수를 대신 해주는 자경단이, ‘모범택시’에서는 아예 복수 대행 업체가 등장한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 직접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들을 일별해보면 수십편에 이른다. 현실의 사법이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타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공통적이다. 초현실적인 영웅담이나 허황된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시청자들은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피해자의 사연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사적 복수가 감행되는 순간 박수를 보낸다.


드라마뿐은 아니다. 요즘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들 중에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보다 ‘피해자를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이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는 방치되어 있다고 진단하는 듯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잠시 역사를 돌아보자. 근대 형사사법체제는 피해자가 직접 복수를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그 임무를 국가에 위임했다. 피해자 대신 공익을 대표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고, 독립적인 제3자인 법관이 최종 판결을 내린 뒤에야 가해자는 처벌된다. 복수의 시대를 마감한 것은 인류의 위대한 성취였으나, 동시에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도 생겼다. 피해자를 중립적 위치에 놓은 것은 복수의 악순환을 막고 국가가 합리적이고 절제된 형벌권을 행사한다는 취지였지만, 정작 사건의 중요한 당사자인 피해자의 위치는 모호해진 것이다. 국가 권력에 맞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체제를 만드는 와중에, 피해자의 입장을 살피는 데 소홀해진 측면도 있다.

물론 드라마가 사적 복수를 부추기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국가의 무책임에 경종을 울리려고 했던 것일 테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감행되는 그 사적 보복을 국가가 해야 된다는 식의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사적 보복이 아니라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강하게 처벌할수록 무조건 효과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처벌하는 것은 효과가 있지만, ‘강하게’ 처벌할수록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관련 학계의 정설이다. 피해자가 범죄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치유하고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위한 공적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지, 단 한번의 가해자 엄벌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를 방치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국회는 피해자 관련 법을 제정했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스마일센터가 설치되었고, 피해자 서포터, 피해자 심리 전문요원, 진술 조력인 제도 등이 확충되었다. 구조금 지급, 법률 구조, 취업 관련 지원, 주거 지원, 상담·치료 프로그램, 신변 안전 조치, 접근 금지 명령 등의 피해자 지원·보호 대책 등도 시행 중이다. 얼개는 짰지만 세부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지는 지능적 사기범죄, 학교폭력, 성범죄, 사이버범죄 등 몇몇 범죄 유형에서는 수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 보복 우려 등으로 신고조차 쉽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 등이 보고된다.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야 하는 대목이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어느 정도 확충되었지만, 피해자가 ‘참여’하는 절차는 아직 부족하다. 회복적 사법이나 형사조정처럼 피해자의 사회 복귀를 모색하는 의미 있는 제도들은 아직 활발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 사인 소추, 피해자 진술권 강화, 피해자의 알권리 보장 확대 등 검토해봄직한 과제들도 남아 있다.

대중의 공감과 분노에 대한 응답은 바로 이런 과제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드라마에서의 ‘복수’처럼 화끈하고 시원하게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조치에 최선을 다해보자. 그리고 10년쯤 흐른 뒤, 2024년 그때 그 사적 제재를 다뤘던 드라마와 대중들의 분노에 우리 공적 시스템이 어떻게 응답했는지 점검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https://naver.me/xX7sNc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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