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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저는 형이랑 결혼해야 효도하는 거예요” [열한 가지 결혼 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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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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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부부 열한 쌍이 각자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내고 법원에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을 했다.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이른바 ‘혼인평등소송’이 시작됐다. 소송에 참여하는 열한 쌍 부부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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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씨(왼쪽)와 박종렬씨는 유튜브 채널 ‘망원댁TV’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연애 초반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곤 했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누구라도 응답해주기를 바랐다. “오늘 형이랑 또 싸울 거 같은데 잘 싸우고 넘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지혜를 주세요.” 주위 사람들은 첫 연애에 코가 꿰였다며 놀렸지만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스물넷 대학생일 때 형을 만나고 세상이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뀌는 그런 느낌인 거예요.”

박종렬씨(33)가 김기환씨(36)를 처음 만난 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였다. 2014년부터 만났으니 올해로 꼭 10주년이다. “만약 이성이었다면 만난 지 5~6년 정도 됐을 때 결혼했을 거예요.” 두 사람이 똑같이, 동시에 말했다. 그보다는 늦었지만 10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5월24일에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냈다. 누가 ‘아내’ 칸에 이름을 적을 것인지 옥신각신하다 결국 제비뽑기를 해 종렬이 ‘아내’가 됐다. “남편-남편으로 적고 싶었어요. 해외에서는 그냥 두 칸 모두 ‘배우자(spouse)’로 적는다고 하더라고요.”

증인으로는 기환의 어머니와 종렬의 아버지가 각자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한번은 아빠가 진지하게 물어보셨어요. ‘기환이가 너랑 정말 평생 같이할 사람인 것 같으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법이 안 되더라도 결혼식은 올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모님 마음은 결국 똑같은 거예요. 나중에 내 자식이 홀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는다’고 악플 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형이랑 결혼해야 효도하는 건데(종렬).” “상징적인 신고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고심하시더라고요. 사인을 하고 펜을 딱 내려놓더니 ‘이제 둘이 헤어지지 말고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뒤로 저희를 대하실 때도 뭔가 더 조심스러워하시고요. 이 서류가 정말 효력을 갖는다면 얼마나 더 큰 힘을 가질까요(기환).”

언젠가 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아이는 종렬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 재작년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게이 부부를 만나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았다. “저희가 ‘아이한테 아빠가 둘인 걸 어떻게 설명했어?’ 물어보니까 ‘우리가 설명해줄 필요 없어. 그건 학교에서 배우는 거야’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충격이었죠.” 종렬이 덧붙였다. “비성소수자 부부가 결혼을 하겠다,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왜?’라고 묻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희에게는 자꾸 질문을 하는 거예요. ‘왜 굳이 결혼하려고 해?’ ‘왜 굳이 아이를 가지려고 해?’ ‘왜 복잡하게 만들어?’ 저도 가족 안에서 자랐는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요?”

‘이렇게도 살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두 사람은 ‘망원댁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게이, 퀴어, 성소수자 하면 보통 비극적이고 힘든 삶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가? 우리 일상은 시트콤 같은데.” 2019년 5월부터 시작한 채널은 벌써 구독자가 31만명을 넘었다. 평범한 은행원인 기환은 두 달 만에 일본 도쿄 지점까지 소문이 나는 바람에 내심 걱정했지만, 퇴근 뒤 집 앞까지 찾아와 맥주잔을 부딪치며 응원해준 동료들과,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라고 말해준 지점장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둘 다 본업 때문에 영상 편집을 외부에 맡기느라 수익은 오히려 마이너스이지만, 그래도 유튜브는 계속하기로 했다. 이렇게 행복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다.

“처음에는 네가 없으면 슬플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라고 말하는 기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종렬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겨서. 형 그런 말 잘 안 하잖아.”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화장실에서 몰래 기도하던 마음으로’ 서로를 간절히 사랑하는 비결을 묻자 이번에도 똑같은 답이 나왔다. 웃음을 머금은 종렬이 말했다. “사실 같이 살다 보면 사실 서로에게 무뎌지고 서로가 최하위로 밀리잖아요. 어차피 밤에 집에서 보니까.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나 생각해보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려고’예요. 아침마다, 그리고 밤마다 그 우선순위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요.”

https://naver.me/G0DFtl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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