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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개와 소통’ 노인 시트콤…사회는 소수자에 귀기울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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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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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한국방송)는 ‘배우 이순재’를 전면에 내세운 12부작 시트콤이다. 시청률이 4%를 넘는 등 반응이 좋다. 사람이 개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판타지 설정을 취하지만, 재치 있는 극본과 연출로 어색함이 적다.

시트콤은 2010년 이전까지 하이킥 시리즈 등 굉장한 인기를 누렸으나, 최근엔 제작이 뜸했다. 하이킥 시리즈에서 ‘야동 순재’로 불리기도 했던 이순재가 자기 이름과 캐릭터 그대로 등장해, ‘국민 배우이지만 갑자기 퇴출당한 이순재’를 연기한다. 여기에 김용건, 송옥숙, 임채무, 예수정도 자기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기 배우, 분장사, 조명감독, 극작가 캐릭터로 출연해, 이순재와 함께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말 통하는 인간 만나니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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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노인 시트콤이다. 올해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었다. 내년이면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간병비 등 사회복지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기성세대들이 사회보험 제도를 이용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의 상당 부분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고 있다거나, 노인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젊은이들의 미래소득을 저당 잡아 노인들에게 거금을 퍼주는 거대한 폰지 사기를 벌이는 중이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하진 않더라도, 지금의 인구 구조하에서 젊은 세대에게 닥칠 노인세대 부양 부담이 엄청나며, 현재와 같은 사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런 시기에 노인과 엠제트(MZ) 세대, 그리고 어린이와 동물까지 아우르는 드라마가 나온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개소리’에서 가장 도드라진 설정은 이순재가 경찰견 출신의 은퇴견 소피의 말을 알아듣게 된 것이다. 보통 이런 독한 설정을 하려면 특별한 계기를 넣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 그냥 소피 말이 들린다. 다른 개의 말은 못 알아듣고, 오직 소피 말만 들린다. 더 이상한 것은 소피가 짖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도 텔레파시처럼 들린다. 너무 황당하지만, 드라마는 이 대목을 중의법을 활용해 납득시킨다. 가령 이런 식이다. 소피가 간식 시간을 넘기면 급하게 당이 떨어져 예민해진다고 하자, 이순재는 노인의 생리로 이해한다. 소피는 “말 통하는 인간 만나니 좋네”라고 말한다. 여기서 개와 ‘말이 통한다’는 것이 판타지가 아닌 그냥 ‘소통’처럼 들린다. 그렇게 풀어버리고 나니, ‘은퇴한 노견과 갑자기 퇴출된 노배우 사이의 이심전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개소리’도 중의법의 활용이다. 소피는 다른 개들과 짖으며 서로 말을 알아듣는다. 개 중에는 고양이 말, 즉 외국어를 하는 개도 있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들이 많은 것을 목격하고, 이들 사이에 공유되는 정보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이순재만 전해 들을 수 있다. 요컨대 동네 개들과 노배우(허구의 세계에 살다가 퇴장한 늙은이)만이 어떤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경찰 등 공식 석상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식으로, ‘개소리’가 되고 만다.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다. 개, 노인, 어린이,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등은 공식적인 사회에서 배제된 하위주체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소수자의 목소리를 ‘개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귀담아들을 수 있는지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된다. 가령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2016)에서 병원의 조선족 간병인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고 있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정보는 늘 공식적인 지식에서 배제된다. 영화의 안팎에서 조선족 간병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고, 그들이 무언가 발언한다면 ‘개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각 분야에서 진행 중인 ‘시니어 시프트’


인구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동안 노인의 삶을 다룬 드라마는 별로 없었다. 2021년 ‘나빌레라’, 2019년 ‘눈이 부시게’ 등이 있으며, 이처럼 노인들이 단체로 많이 나오는 드라마는 2016년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처음이다. 장르적으로 살펴보면 ‘개소리’는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의 2017년 일일드라마 ‘평온한 고향’과 비슷하다. 아사히티브이(TV)가 2017년에 81살 노장 작가 구라모토 소에게 극본을 맡겨 6개월간 장기 방영한 드라마다. 경치 좋은 무료 양로원에 왕년에 날리던 배우, 작가, 음악가, 예술가 등이 모여든다. 양로원은 대기업 예능 프로덕션 그룹 총수가 사비로 만든 곳으로, 입소 자격은 전성기 시절 영화와 티브이에서 활동해온 아티스트면 된다. 이들은 대중의 기억에서 잊혔지만, 이곳에서 새롭게 만나 향수와 감동 어린 휴먼 드라마를 펼쳐낸다. ‘평온한 고향’은 이후 속편까지 만들어졌다. ‘개소리’의 왕년의 티브이 방송 전문가들이 거제도 집에 모여 산다는 설정이 이를 참조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으로 ‘개소리’는 ‘벼락 맞은 문방구’ 시리즈(투니버스)나 ‘플루토 비밀결사대’(교육방송) 같은 어린이 탐정물을 연상시킨다. 어린이 탐정물에서 어린이들은 팀을 짜고 각자 개성과 능력을 살려,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여기에 판타지가 가미되는데, 반려동물이나 애착 인형, 장난감, 문구 등이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요컨대 ‘개소리’의 서사가 어린이 탐정물에서 어린이 자리에 노인이 바꿔치기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구도는 낯설지 않다. 노인의 치매와 주간보호시설을 그린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후반부를 떠올려보면, 노인들이 작전을 짜서 시설을 탈출하려는 장면은 어린이 드라마의 장르적 만듦새를 따른다. 어린이 드라마는 2016년 ‘내일은 실험왕 2’ 이후 거의 명맥이 끊겼는데, 어쩌면 어린이 드라마를 만들던 소수자적 감각과 양식이 노인 드라마로 재탄생될지 모른다.


이것은 엉뚱한 공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폐교를 되살려 시니어들을 위한 평생학습 시설로 활용한다. 서울시교육청도 올해 폐교를 노인복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아기 기저귀 생산라인이 성인용 기저귀 생산라인으로 교체된다든지, 학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임대했던 건물이 노인주간보호시설로 바뀌는 등의 ‘시니어 시프트’가 산업의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화 콘텐츠에서도 짝짓기 프로그램 출연자가 20대에서 50대로 바뀌었다(‘끝사랑’). 이런 흐름 속에서 어린이 드라마 형식을 계승한 노인 드라마의 첫 사례로 ‘개소리’를 꼽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 개소리’는 노인의 일상을 배뇨장애, 건망증 등의 건강 문제와 신인이나 매니저와의 마찰, 키오스크 사용 불편, 자녀와의 불화 등 사회적 갈등을 깨알같이 잘 버무린다. 드라마는 노인의 삶에 대한 알싸한 ‘현타’를 담는다. 가령 이순재가 퇴출되는 과정을 보자. 존경받던 대배우지만,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신인 배우와 원만하지 못했다. 설마 했는데 신인 때문에 ‘짤렸다’. 배뇨장애가 있었다. 노인에게 흔한 증상이었지만, 사회적인 망신을 불렀다. 거기까지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다 보니, 소변이 또 말썽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더 큰 사달을 냈다. 그 결과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박살났다. 작은 악재들이 겹쳐 큰 낭패가 되고, 눈덩이처럼 굴렀다. 이것은 그럭저럭 건강히 지내던 노인이 작은 일을 계기로 드러눕더니, 그만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노인병학’의 수순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내재 역량 부족으로,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는 노인에게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사이버 레커’ 등 젊은 세태 잘 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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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살인사건을 통해 요즘 젊은 세태의 풍속도를 잘 녹여낸다. 가령 유튜버 살인사건은 ‘사이버 레커’를 잘 보여준다. 선물 상자 속 살인사건은 동성 연인에 의한 살인으로 밝혀져, 꽤 진보적인 느낌을 준다. 해녀 살인사건도 피해자가 친자식들과는 상속을 둘러싸고 관계가 틀어지고 양딸과는 살갑다. 급기야 고양이에게 거액을 상속한다는 외국에서나 볼 법한 일을 꾸민다. 이는 아직 현행법상 불가능하지만, 출생률이 낮아지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난 현실에서 ‘펫 신탁’등 여러 대안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순재의 친구들 사연도 흥미롭다. 임채무가 푼돈에 연연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욜로”를 외쳤으나, 사실 “욜로”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들이었다는 깨달음도 알싸한 ‘현타’를 안긴다. 동성 부부가 되려는 아들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불화와 오해 속에서 아들의 실종을 겪은 예수정의 사연도 기막히다.

8회가 방송되는 동안 살인사건 수사가 무려 4건이다. 거제도 작은 관할지에서 이렇게 많은 살인사건이라니, 무리가 아닐까. 극의 텐션을 높이고 경찰견 소피의 활약을 살리는 건 좋지만, 그것이 꼭 많은 살인사건의 해결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노인 대상 범죄를 다루는 것이 더 취지에 걸맞아 보인다.

1000만명의 노인 인구가 가장 많이 하는 여가 활동이 티브이 시청이다. 하루 4시간 이상 시청한다. 젊은 연령층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뉴미디어로 옮겨간 뒤에도, 노인들은 티브이 앞에 남아 본방사수를 한다.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편성해야 할 이유이다. 가령 일본처럼 노인 시트콤을 일일드라마로 만들거나, 시즌제로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또는 과거 지상파 채널에서 오후 5~6시가 ‘어린이 시간’이었듯이, 초저녁잠이 많은 어르신을 위한 ‘노인 시간’을 편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청력이 약한 노인들을 위해 한글 자막을 까는 등의 배려를 곁들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황진미│대중문화평론가



https://naver.me/Fk7hkp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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