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링크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410170600001
<이세계 퐁퐁남>의 작가는 사실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그는 무엇도 재현하지 않고 허접하게나마 서사를 구조화하지도 않았으며 캐릭터를 주조하지도 않았다.
이 만화는 그저 퐁퐁남을 비롯해 인터넷에 부유하는 ‘밈’화된 --의 방언들을 헐겁게 기워 주절대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2화에서 이세계인이 박동수의 사연을 믿지 않으며 “재산에 기여도 안 한 사람이 단순히 결혼해서 몇 년 살았다고 재산을 절반 이상 가져간다고? 심지어 바람 핀 상대를 법이 보호해주고? 구라도 정도껏 쳐야 믿어주지. 그딴 체계 없는 세계가 있을 리 없잖아! 있다면 진작 멸망했을 거라고!”라 외친다. 나무위키를 통해 ‘사이다 발언’으로까지 평가된 이 대사는 이세계인의 입을 빌었을 뿐 흔한 남초 커뮤니티의 원념을 발산한 것에 불과하다. 박동수의 집이 ‘퐁퐁남’ 담론에서 관성적으로 ‘퐁퐁시티’로 언급되는 동탄인 것도, “법이 지나치게 여자 쪽에 유리하게 되어있단 것”이라는 변호사의 대사도, “출동한 경찰이 아내의 일관된 진술(가정폭력에 대한 허위 진술)만을 믿고 사건을 진행”했다는 박동수의 독백도, 모두 지난 몇 년간 인터넷에서 떠돈 남성 역차별에 대한 흔한 ‘밈’의 언어일 뿐이다. 애초에 재판에서 증언은 중요하며 증언의 신빙성은 진술의 일관성과 비모순성을 통해 경험적으로 증명되어왔지만, 2018년 논란이 된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 이후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개념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무죄도 유죄로 만드는 남성 역차별의 사례처럼 폄하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일종의 대안사실을 형성해 끊임없이 순환됐다. 현재 3화까지 공개됐고 몇 가지 사건이 나열됐지만, 사실 <이세계 퐁퐁남> 작가는 자신의 언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거나 못했다. 만약 이 만화의 작가라는 게 있다면, 이름을 올린 ‘퐁퐁’(실제 필명이다)이 아닌, 디씨나 일베, 펨코 같은 커뮤니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