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성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의 정궁이였다
주로 프로이센의 국왕들 그리고 독일로 통일된 후의 황제들이 살았다
하지만 1차대전에서 독일이 지면서 왕정이 폐지 되자 박물관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히틀러는 군주제를 굉장히 혐오하는 양반이라 아예 밀어버릴려고 했는데 반대가 만만치 않아서 살아남았다
독일이 분단되자 여긴 공산국가인 동독에 속했는데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며 다 밀어버렸다
그러다 2000년대 와서 부랴부랴 복구를 시작해서 현재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 됐다고 한다
흑백 사진이 파괴되기전 오리지널 모습이고 밑이 200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 궁전(위), 베르사유 궁전(아래)
위에 루브르 궁은 1202년부터 루이 14세 전까지 프랑스의 정궁이였다
근데 루이 14세는 파리에 있는 루브르 궁에는 영 관심이 없었고
대신 파리 외곽의 시골에 사냥용 별궁에 정궁을 건설하니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이다
혁명이 터지면서 왕정이 폐지되자 두 궁궐 다 주인이 없어졌고
지금은 관광지로 쓰인다
이탈리아: 팔라티노 황궁
저 폐허가 된 돌더미는 놀랍게도 바로 2천년 전 로마제국의 정궁 되시겠다
이제 더는 궁전이 없기 때문에 영문 위키백과엔 그냥 팔라티노 언덕이라고 나와있다
로마의 7대 언덕 중 가장 핵심적인 언덕이였으며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황궁이 세워져
그 후 약 500년간 로마제국의 정궁으로 기능했다
참고로 이 팔라티노(Palatino)란 단어에서 궁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Palace"가 파생됐다
현대까지 이어졌다면 콜로세움급으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정말 개쩌는 관광지로 남았을듯
영국: 웨스트민스터 궁전(위), 버킹엄 궁전(아래)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버킹엄 궁전 이전의 영국의 정궁이였다
동시에 세계 최초의 의회이기도 하다 즉 왕궁이랑 의회랑 같이 쓴 것
그러나 1500년대 가면 이미 왕궁보단 상하원 의회+재판소로 더 자주 쓰였다고 한다
그렇게 분명 궁궐이긴 궁궐인데 궁궐이 아닌거 같은 요상한 형태가 됐다
그러다 1834년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대화재로 궁궐 대부분의 건물들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대화재가 의미하는 바는 컸는데 웨스터민스터 궁전을 싫어했던 윌리엄 4세는
이 때다 싶어 새궁궐로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왕실가족들이 거주하는 버킹엄 궁전이다
(하지만 버킹엄 궁전도 실제로 왕실 사람들은 잘 안쓰는편이고 주로 별궁에서 많이 시간을 보낸다고 함)
러시아: 크렘린 궁전
크렘린이라는 말 자체가 러시아어로 요새,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확히는 요새 안의 도시라고 한다)
11세기 부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성곽도시로 살았으나 본격적인 궁전으로 기능을 한건
15세기 이반 3세때 이탈리아 장인들을 초빙해 근사한 궁전으로 환골탈태 시켰다고 한다
이후 차르들이 거처하면서 크고 작은 개수나 중축이 이루어져 현재의 크렘린의 모습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소련이 세워지면서 왕조의 법궁에서 러시아 정치 자체의 중심지로 부상 했다
실제로 백악관,청와대처럼 '크렘린'은 러시아 정부를 지칭할 때 쓰는 고유명사화 됐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경복궁이 아직까지도 정부 핵심 건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후에 황궁
1808년부터 1945년까지 쓰였던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의 정궁이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들이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미친듯이 화력을 퍼부었고
이에 미군은 베트콩을 섬멸하기 위해 공습으로 화답 했다
그 과정에서 160개나 되던 전각이 10개 남기고 싸그리 전소 됐다
그야말로 서로 싸우다 다 부숴버린 꼴이였다
오죽하면 핵심 중 핵심인 태묘도 박살 났는데 (우리로 치면 종묘다)
베트남인들도 먹고 살기에 바쁘기에 복원에 큰 관심이 없고 돈도 없고...
결국 2015년을 끝으로 더이상의 복원 공사는 없다고 한다
참고로 이 궁궐의 정식 명칭도 자금성이다
일본: 교토 어소
현재 도쿄 황궁으로 옮겨가기 전 일본 국왕의 거주지로
1392년부터 1869년까지 약 550여년간 일본 왕실의 정궁이였다
다만 일본 국왕이 무조건 여기서 지냈던건 아니다
전국시대에 접어들자 이 정도 왕궁을 관리하기가 어려워졌고 이에 귀족들 저택에 빌붙어 살기도 했다
(참고로 저때 일왕들은 즉위식 치를 돈도 없어서 쇼군들이 내려주는 돈으로 연명하던 시절이다)
이후 크고 작은 재건이 8번이나 이뤄져 1855년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지만
곧 얼마 안있어 수도가 도쿄로 바뀌면서 정궁의 위치도 상실하게 된다
중국: 자금성
중국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황궁으로 동원 된 인력만 100만에 무려 14년동안 지었다
막상 명-청대의 황제들은 예법을 철저히 준수해서 빡빡하게 지어진 자금성을 부담스러워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금성 옆에 위치해 있고 넓은 호수와 정원이 갖추어져 있어 한결 여유로운 중난하이에 많이 머물렀다
(지금도 공산당 핵심 중 핵심 건물이다)
청나라 황제들은 그 유명한 '열하일기'에 나오는 열하에 여름궁전을 지어놓고 피서를 가기도 했다.
건륭제 같은 경우엔 자금성에서 산 기간이 일생의 1/3도 안된다
그리고 자금성에 있던 유물을 포함해 명청시대 유물은 국공내전 때 장제스가 다 들고 날라버렸다
그래서 고대~중세 유물은 중국 본토가 더 많은데 명청시대 유물은 중국과 대만이 비슷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 경복궁
두번째 짤이 경복궁 초창기를 기록한 그림인데
보면 황금기와 청기와 등을 써서 알록달록하다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경복궁 중건에 주로 쓰인 기와는 청기와였다
더구나 이 때 까진 지붕에 황금 장식도 하던 기술이 남아 있어(중후기 가면 사라짐) 매우 화려하기 까지 하다
세종대왕이 왕자시절 2층 전각에서 감기 걸렸다는 기록도 있는걸 보아 지금처럼 단층만 있던건 아닌걸로 보인다
고려시대까지 쌓였던 우리의 화려한 건축 기술이 이 때 까지 어느정도 보존이 됐던 것이다
그러다 임진왜란 전까지 계속 확장 공사가 이루어져 그 규모가 무려 5천칸에 다다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이 거대한 대궐은 임진왜란 때 분노한 백성들이 불태워버리고
이후로도 전쟁의 상처가 너무 커서 복원은 꿈도 못꾸.....긴 개뿔 광해군이 참 웃긴게
경복궁은 너무 거대해서 재건은 힘들다면서 경복궁보다 더 큰 인경궁을 지었다
정확히는 경복궁이 싫은게 아닌가 의심이 들정도로 경복궁만 철저히 내팽겨치고
창덕궁,창경궁 같은 기존 궁궐 재건+신축 공사(경희궁,인경궁,자수궁)만 3개를 더 벌렸다
당연히 이는 민초들에겐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광해군이 쫓겨나는 주원인중 하나가 된다
그러다 근현대 들어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정치인생과 나라의 경제를 경복궁 중건에 올인하여
그렇게 경복궁이 다시 부활 했는데
이 때는 원래 규모보다도 더 크게 무려 7400칸 짜리로 부활했다 ㄷㄷ
그 살기 힘들었던 구한말에 임진왜란 이전 규모의 1.5배로 확장 공사한것이였다
문제는 정작 집주인이였던 고종이 경복궁을 별로 안좋아해서
몰래 건청궁이라고 민가처럼 생긴 작은 전각을 경복궁 북쪽 끄트머리에 지어
아관파천 전까지 사실상 거기서 실거주했다 (이후 덕수궁으로 옮겨갔다)
이후 일제는 경복궁의 약 90%를 뜯어내고 정전인 근정전 앞에다 총독부를 건설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 명확했다
경복궁은 조선의 상징인데 그 상징을 철거하고 식민지배의 상징인 총독부로 근정전을 가린다?
총독부가 철거 될 수 밖에 없던 것도 이러한 위치선정이 결정적이였다
문제는 경복궁 복원인데 창덕궁은 전체를 확실하게 그린 동궐도라도 있지만
경복궁은 전체 모습이 다 나온 지도나 그림 사진 등이 단 한점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 지금 복원 한다고 짓는것도 추측에 기반해서 하는 사실상 신축이나 다름 없다...
사진으로 전각들만 다 찍어놨어도 복구가 수월 했을텐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