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에 나는 참사 생존자로서의 삶을 담은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이 나온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나는 전국을 순회하는 유랑단처럼 북토크를 강행했다. 만날 수 있는 독자들은 다 만났고, 책을 통해 참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참여했다. 3월, 부산에 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수 있을까 싶은 북토크였다. 어느새 행사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고, 대망의 독자 질문 순서가 도래했을 때, 그제서야 내 눈에 한참을 울고 있는 중년의 여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북토크 시작부터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분이었다.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 하던 찰나, 그녀가 손을 들고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눈물과 함께 문장을 겨우 겨우 내뱉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작가님께 사과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사과. 내게는 듣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단어였다.
"제가, 이태원 참사를 두고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던 사람이에요. 몰랐어요 정말,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이리도 무지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었나. 너무 나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정말…"
그리고 이어지던 그녀의 다음 발언에서,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독자 30명과 서점 대표님까지 울려 버린 이야기였다.
"제가 사실 오늘 제 아이들을 데리고 왔거든요. 고등학생 딸아이, 제가 이 아이 앞에서 2차 가해성 발언을 했어요. 놀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뭐 자랑이라고 저렇게 떠드느냐고... 내가 이 아이 앞에서 얼마나 이상한 말을 한 걸까요. 아이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싶고, 네 엄마가 이렇게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아이를 직접 데리고 북토크에 왔습니다. 정말 사과하고 싶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참사 이후, 남몰래 흘렸던 눈물이 한 트럭이었지만. 그날 부산에서 흘린 눈물의 양이 더욱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가 목 놓아 울게 한 그녀의 속죄가, 내게는 소화제 같았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다치게 하면서도 북토크를 전국으로 돌며 강행한 이유는,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참사 이후 나는 처음으로 직접 사과를 받았다. 국가에게도 책임의 당사자들에게도 받지 못한 사과를, 철옹성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한 시민에게 받았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