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 내 짝은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으로 당시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다. (…) 어느 날 우리 둘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가 가지런히 높인 슬리퍼를 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 그의 말에는 그 어떤 공격성이나 비아냥의 기운도 없었다. 그의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천진함이야말로 그가 가난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영하 <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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