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전, 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 란>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영화 축제에 OTT 상업영화를 간판에 내건 파격 행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제작사 모호필름에서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각종 논란을 불러 모았다. 영화제 내내 진통을 겪었다.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두고 박도신 부집행위원장은 한마디로 "재미 있었다"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데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OTT 플랫폼에 프리 패스를 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따랐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OTT 오리지널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전례가 있었으나 비상업영화였다. 내년 30주년의 해가 되는 때에는 어떤 얼굴로 맞이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개막작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게 봤다. 영화제 아니면 볼 수 없는 대형 스크린의 프리미엄이 작용한 걸까. 무협 장르의 흔하디흔한 우정과 오해, 복수, 화해의 과정, 혹은 영웅서사를 굳이 조선으로 옮겨와야 했나 살짝 갸우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액션 활극이란 장르에 충실한 볼거리에 눈을 떼기 힘들었다.
<전, 란>의 전복되지 못한 계급과 이름의 정체성은 현대에도 여전히 동등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왜란 7년 동안 왕은 누구든 나라를 위해 싸우면 면천시켜 준다는 조건을 내건다. 민중은 모든 것을 걸고 싸웠지만 신분 상승이 아닌 반역자가 되어 핍박당한다. 이름의 뜻이 바뀐 천영, 비빔밥처럼 세상을 아우르는 계의 상징이 된 범동의 이름값은 오늘날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하는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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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2024년 사람들은 수저론을 요리에 접목한 넷플릭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보며 열광했다. 백수저, 흑수저로 나눠 대결하는 플랫폼인데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에 철저히 '맛'으로만 승부한다는 점에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백수저는 이름으로 불리고, 흑수저는 닉네임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결에서야 나폴리 맛피아는 당당히 권성준이란 이름을 걸고 시그니처 요리를 선보인다. 재미교포인 에드워드 리는 미국 이름 대신 이균이란 한국 이름을 걸고 요리한다. 이름은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연결되는 궤적을 뜻한다.
천영, 범동의 이름값은 시대의 한계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철저히 나아가는데 주력한다. 이를 통한 독립적 개체의 설립은 현시대에도 낯설지 않는 삶의 목적이며,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되묻는데 일조한다.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047/000244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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