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까지도 감동이 가라앉지 않아 출근하자마자 그의 수상 소식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출력물을 부러 뽑아 교무실 문에 여러 장 붙여놓았다. 누구든 모를 리 없지만, 흥분과 감동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 동료 교사도, 아이들도 당일의 인사말은 '한강과 노벨상'이었다.
서둘러 그의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수소문했다. 워낙 좋아했던, 정확하게는 고마워했던 작가라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 그의 작품은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해다 읽었는데, 이 책만큼은 차일피일 미루던 차였다. 사서 교사를 졸라 어렵사리 구했고, 신줏단지 모시듯 종일 품에 안고 다녔다.
'노벨문학상, 우리 현대사에 건네는 위로!'
순간 내 카톡의 상태 메시지도 이렇게 바꿨다. 뭐라고 적을까 단 1초의 고민도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냥 한 줄로 정리가 됐다. 너무 길어서 수식어를 덜어냈을 뿐이다. 원래의 문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민간인 학살로 점철된 대한민국 현대사에 건네는 세계 시민들의 따뜻한 위로'였다.
어떤 역사서보다 시대를 진솔하게 기록한 사료
내가 그를, 그의 작품을 존경해 마지않는 이유다.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참혹한 일상을 힘겹게 견뎌내는 우리 이웃에 관한 이야기여서다. 그의 작품을 허구적 소설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 어떤 역사서보다 시대를 진솔하게 기록한 사료라고 믿고 있다.
내년 수업 계획을 짤 때,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여 부교재로 삼을 생각까지 조심스럽게 해본다. 어차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니만큼 교과서 내용과 연결 짓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래전 제주 4·3을 다룰 때 영화 <지슬>과 소설 <순이 삼촌>을 활용해 나름의 효과를 거둔 경험도 있다.
<소년이 온다>의 경우, 문장의 한줄 한줄이 역사 서술처럼 읽혔고 장면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아프게 그려졌다. 문단이 끊겨도 장면은 잔상으로 남아 포개질지언정 끊어지지 않았다. 교과서의 무미건조함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훌륭한 부교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나와 같은 시대를 건너온 동년배여서인지 감정 이입도 수월했다. 자타공인 독서광 아이들조차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고 한 건 그런 측면도 있을 테다. 한 동료 교사는 현대사에 대한 사전 학습이 되어 있다면, 아이들이 소설을 훨씬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거라고 귀띔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한 줄 평이다. 고백하건대,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했다. 작가가 천착해 온 5·18과 제주 4·3에 대한 세계 시민의 공감과 연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당한 공권력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도 통한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민중의 편에 기꺼이 서겠다는 공개적 선언이다.
5·18 왜곡 일일이 찾아내 신고하지만 역부족
5·18 진상규명과 진실과 정의 회복에 온 힘을 쏟고 있는 5·18 기념재단에서는 현재 역사 왜곡과 폄훼에 대응하기 위한 T/F 팀까지 꾸려 활동 중이다. 이미 역사적 평가와 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인데도 북한군 개입설과 가짜 유공자 주장 등 5·18 관련 왜곡과 폄훼가 여전하다. 유튜브 등 SNS에서는 대세라고 할 만큼 광범위하다.
그릇된 주장을 반박하는 영상을 만들어 탑재하는가 하면, 관련 인터넷 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을 일일이 찾아내 신고하지만 역부족이다. 역사적 진실엔 눈 감은 채 온갖 자극적인 내용으로 도배된 콘텐츠들이 자고 나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한 명의 도둑을 열 명의 경찰이 못 잡는 법인데, 분량으로 치면 한 명의 경찰이 열 명의 도둑을 쫓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외쳐댄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가는 법정에서 다툴 게 아니라 후세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며 부르댄다. 그러면서 내세우는 근거들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극우적 주장을 늘어놓는 유튜브가 다른 유튜브 속 주장의 근거가 되는, 말하자면 '돌려막기' 식 주장이다.
개중에는 전공자도 아닌 '듣보잡' 외국인을 등장시켜 그럴듯하게 다른 나라의 시각이라며 홍보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어차피 이름 뒤에 따라오는 직함이야 영어로 대충 만들면 그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으른 구독자들에겐 잘 먹히는 방식이다.
지난 2011년,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을 때의 경험이다. 당시 광주에서 근무하는 역사 교사로서, 한창 5·18 사적지 답사를 인솔하고 현대사 강의를 다니고 있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마당이니, 이제 더 이상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극우 세력이 발붙이지 못할 거라고 주먹 불끈 쥐고 확언했었다.
섣부른 자만심이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효과는 채 한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답사객과 수강생 중에는 지정된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고, 유네스코의 위상과 전문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황당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유네스코가 우리 역사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거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일상화했다. 정부는 방관을 넘어 조장을 일삼았고, 일부 정치인은 대놓고 역사적 평가와 법원의 판결을 부정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그들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유명세를 떨쳤고, 쏠쏠한 경제적 이익마저 챙겼다. 알다시피, 그들 중 일부는 현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꿰찼다.
이들의 질기고도 황당무계한 주장의 예봉을 꺾을 또 다른 '계기'가 절실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정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것이어야 했다. 5·18 기념재단의 이른바 '각개 격파'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5·18 계기 교육에 정성을 다하던 교사들도 시나브로 지쳐갔다.
한강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이 와중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5·18과 제주 4·3에는 '가뭄 속에 단비'라는 식상한 표현보다 '미세먼지가 뒤덮은 하늘을 일거에 쾌청하게 만드는 회오리바람'이 더 적확한 비유겠다. 보통 사람들에게 노벨상 수상은 인지도에 있어서 유네스코 지정과는 무게감이 확연히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불어닥친 '한강 열풍'에 서점가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독자가 된 세계 시민들은 이국땅에서 벌어진 5·18과 제주 4·3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될 테다. 그들의 공감과 연대는 버젓이 왜곡과 폄훼를 일삼고 국경 없이 활개 치는 극우 유튜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예방 주사가 될 것이다.
"수십만 역사 교사와 학자, 활동가들이 못한 일을 한강 작가 한 사람이 해낸 셈이죠."
한 동료 교사가 감격해하며 건넨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인의 영예와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는 쾌거라기보다 5·18과 제주 4·3 진상규명과 진실, 정의의 회복을 위한 세계 시민들의 응원과 동참의 메시지다. 당시 희생자들의 영혼과 유가족의 신산했던 삶을 위로해 준 한강 작가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사족. 한 아이가 알려준 '몹쓸' 정보를 공유한다. 전임 정부 시절부터 좌파 세력들이 집요하게 노벨위원회를 매수한 결과라는 유튜브가 돌고 있다는 거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노벨위원회가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편파적으로 결정됐다는 내용도 있단다.
하긴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비슷한 음모론이 퍼진 적이 있다. 다행이라면, 그때보다 그들의 '약발'이 떨어져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 듯하다. 이게 사회의 진보라면 진보겠지만, 우리 '사람'은 못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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