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동호는 물었다.
은숙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육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 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 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 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어이, 돌아오소.
어어이, 내가 이름을 부르니 지금 돌아오소.
더 늦으면 안되오. 지금 돌아오소.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특별히 잔인한 군인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처어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한강 <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