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을 되새기고 경계하는 것은
나의 몫으로 둘 것이니,
그리하여 오로지 나만은 잊지 않고 기억할 테니.
그대들은 모두 잊고 지내거라.
여느 날, 여느 때처럼.
“떠난 사람은 기억해줘야 하고. 머무는 사람은 바라봐줘야 하니까.”
털어내면 좋고 떨쳐내면 더 좋겠지만 못 하셔도 괜찮습니다.
남들과 달라서 그런게 아니라 남들과 똑같아서 그런겁니다.
저는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모르는 일들을 가정해서
제가 살았던 시간이 더 불행했다고 단정짓고 억울해하고 아쉬워하고 싶지는 않아요.
모르는 일이니까, 몰라요.
없었던 일이니까.
없던 일을 두고 지금이 더 불행할 거라고 멋대로 짐작하는건,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잖아요.
잃고 나서도 떠난 것을 모르고 곁에 두고도 머무는 것을 몰라주면.
살았었고 살아있는 이는 잊히니까.
그 생이 잊혀지고 마니까.
그렇게 지워버리면 안되니까.
그렇게 지우지 말라고 배웠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아니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완전히 지워지기 전에, 기억하고 바라봐 달라고.
아마 다들 그럴겁니다.
그러니까 대단해야 한다고, 단단해야 한다고.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일부러 애쓰실필요 없습니다.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가려가면서 단단해지려고 하지 않아도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저도 모르게 단단해지고 대단해지는 때가 옵니다.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
작가 사망으로 연재 중단
삶에도 저작권이란 것이 존재할까.
하나의 삶을 저작(著作)이라 표현해도 좋은 것일까.
"유중혁, 정신 차려라. 몇 번을 반복한다 해서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회차를 버린다고 다음 회차가 좋아질거라고 착각하지마.
어쩌면 네가 버리려고 하는 이 회차가,
'인간'으로서 이 세계의 끝을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회차'일지도 모르니까."
활자와 활자가 만든 빈틈.
그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나만의 작은 설원(雪原).
누군가가 들어가 몸을 누이기엔 터무니없이 좁다랗던 그 공간은,
숨기 좋아하는 어린 나에겐 꼭 맞는 장소였다.
“과거의 실패를 경전처럼 여기지 마. 아무것도 안 하면 바뀌는 건 없다고.”
"왜 네가 실패했다 생각하지?"
"네가 원하지 않았던 결말은 모두 실패한 결말인가?"
「이 이야기가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영원히, 너를 위한 종장을 쓰겠다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떤 별의 빛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환한 하늘.
그 너머로 보이는 성좌들의 빛을 헤아린다.
헤아리고, 또 헤아린다. 모르겠다.
별들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제대로 된 삶은 한 번도 없었지만, 잘못된 삶도 없었다.
삶의 윤리를 논하기에는 세계가 너무 가혹했고,
희망을 이야기 하기엔 절망의 부피가 너무나 컸다.
내가 살아온 모든 궤적이, 이야기가 되어 길을 만들었다.
“그건 기만이야.”
“어떤 구원은 그렇게 불리지.”
<전지적 독자시점>
“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게 더 비효율적일 수도 있어요.
더 위험해지거나, 더 힘들어지거나 할 수도 있어요.
이게 저 사람들을 떼어낼 마지막 방법일지도 몰라요.”
“생명을 구하는 일은 늘 비효율적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덜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서도 여길 나갈 수 있는 거라면.
연꽃은 더러운 물에 젖지 않는다?
끔찍하고 힘든 일이 찾아와도 크게 마음 두지 말아요.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육지에서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 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돌아갈 수 없다.
“전 호구라는 단어 싫어해요.
그건 착한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에요.
자기가 그러니까 남도 그럴 거라고
물귀신처럼 도덕 수준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거잖아요.
그런 말 쓰지 말아요.”
우리는 왜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감수하려고 할까.
아무튼 착한 사람들은 착하다는 것만으로 매력이 있어요.
완성된 인간이라는 느낌을 주죠.
그냥 보고 있어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해답을 주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 말이에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요.
착하지 않더라도 노력은 하고 살아야 해요.
언젠가의 밤에, 과거 자신이 내린 선택들로 인해서
잠들지 못하는 일이 적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가진 이기심을 이 순간만큼믄 내려놓고,
최대한 주위의 사람들을 도와가며 이 재난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손익과 합리를 따지지 마십시오.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가 없이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건강하게 살아서 나갑시다.
당신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단한 일들을 해냅니다.
불씨 하나가 들판을 다 태우고,
빗방울 하나가 강을 범람시키는 것처럼요.
당신 같은 이가 탱크 18대를 혼자 막기도 하죠.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거야. 죽은 사람이 뭘 알겠어.”
“일종의 마침표지.
점을 찍어야 다음 문장이 시작되는 것처럼,
산 사람은 마무리 짓고 계속 살아가는.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어서 계속 지나간 앞부분을 반복하기도 하지.
혹은 같이 책장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보호자 없는 애 취급할 필요 없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똑같은 사람이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 밖의 모든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참아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이 하나둘씩 늘어날 뿐이라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한 채
주위의 눈치를 먼저 살피게 되는."
"어른이니까요."
"복수는 살아있는 사람의 자기만족이잖아."
"타인을 향한 지극히 순수한 사랑이라면 상대가 사라진 순간 끝나는 거라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복수조차 할 필요가 없어."
"사랑은, 감정은 보통 상호작용이고 너를 사랑하는 '나'도 중요하게 여겨지게 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거니까.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감정교류를 위해서는 너 이전에 내가 있어야 하지."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거란다.
순수하게 나를 위한 복수가 아니라는 뜻이야."
"사람은 적당히 감추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거야.
제아무리 훌룡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두운 부분이 아예 없기란 힘드니까.
섣불리 다 알고 싶다고 했다간 서로 상처받고 끝나기 쉽다더라."
상처는 낫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생을 짊어져야 하는 상처도 있다.
깜박 잊어버릴 정도로 흐릿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악화가 될 수 있다.
갑자기 욱신거려 오고 파헤쳐지기도 할 것이다.
비가 오면 옛 상처가 쑤신다고 흔히 말하듯,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닌 무언가가 굵은 빗줄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키운 S급들>
“너는 잘 해냈어.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좋았어.“
망각과의 투쟁이야 말로 기억의 목적이지 않니.
당신이 다시 없으리라고 믿을 때 우리는 고백을 한다.
평생을 함께해 달라고.
당신과 함께 살다 죽겠다고.
하지만 당신이 다시 태어나고 내가 또 다시 태어난다면
결심과 고백의 무게는 하찮아진다.
여기서 ‘당신’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세계를 비유하는 단어이다.
사랑이 죽은 세계에선 사랑의 언어를 흉내 낼 수밖에 없으니까.
너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무지가 앎보다 광대하다.
그러나 너는 네가 부차적 존재로서 속해 있는 이 전기에 관하여 들을 자격이 있으니,
이것은 참으로 긴 이야기.
신이 쓰는 인간의 서사시.
<문과라서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사람을 정말 지옥으로 빠트리는 게 뭔지 알아?
진짜 지옥은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살아남은 내가 사실은 사형제들이 죽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버리는 거지.
사람을 진정 지옥으로 끌고가는 것은 후회야.
무너진 것이 있으면 다시 쌓는다.
실패한 것이 있다면 다시 도전한다.
그래도 이룰 수 없어 가슴을 찔러 오는 것은 그저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이니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입니다.
아직은 지난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이 선의로 가득 차게 될지도 모를 일이죠.
<화산귀환>
“한 번만 더 안아 줘. 너무 오랫동안……, 너무 추운 곳에 있었어.”
“그녀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 줘.”
“알았어.”
“행복하게 살아.”
“그럴게.”
“사랑해. 그거 하나로…… 저 암흑 속에서 버텼어.”
<하얀 늑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