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바로여기 9] 서울양천도서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책이' 전시
지난달, 이곳 열람실 한쪽에서 자그마한 행사가 열렸다. 공간은 얼마 차지하지 않았지만 제법 오래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전시의 제목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책이!', 낙서, 오염, 절취 등 오·훼손도서를 전시한다는 설명이 함께 나붙었다. 그를 가만히 살펴보다보니 정말이지 이런 전시가 꼭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일찌감치 했던 생각일 수 있겠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게 벌써 삼십년을 훌쩍 넘었으니 말이다. 공공도서관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따지자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공공서비스다.
한때는 열악했던 것이 시민의 힘이 커지고 문화증진과 독서보급의 필요가 일어나며 시민 가까이로 다가온 서비스다. 그로부터 오늘의 시민들은 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양질의 도서를 쉽고 편하게 빌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민이 한 마음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중도덕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오로지 저 하나만을 돌보고 다른 이들을 불편케 하는 이가 주변에 적잖이 있는 것이다. 책을 빌려보다보면 정말이지 상태가 엉망인 책을 쉬이 만날 수 있다. 온갖 방법으로 더럽혀지고 훼손된 책을 보았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없게끔 상한 사례도 적잖았다.
▲ 서울교육청 양천도서관 밑줄이 가득한 책장 |
ⓒ 김성호 |
가장 흔한 사례는 책에 낙서하는 것이다.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메모까지 한다.
▲ 서울교육청 양천도서관 낙서가 빼곡한 책장 |
ⓒ 김성호 |
밑줄 많은 또 다른 책 위엔 '낙서란 나와 책 사이의 일방적인 대화이다'란 글귀가 쓰였다.
▲ 서울교육청 양천도서관 책장째로 절취된 책(오른쪽)과 반려견이 뜯어먹은 책 모습. | ||||||||
ⓒ 김성호
책이 훼손되는 흔한 사례로는 음료를 쏟거나 빗물에 적시고, 반려견이 물어뜯은 경우도 있다.
또 하나 분통 터지는 사례가 있다. 책 안에 문제가 들어 있는 경우다. 어떤 사용자는 빈칸을 남기지 못하고 직접 문제를 풀어 그 답을 책 안에 적어놓는다. 아예 채점까지도 해두는데, 그러면 다음 이용자는 책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는 사례도 있다.
이번 전시는 자기 잘못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을 위해 기획됐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전시를 보고 다시는 전과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대단한 악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 책을 빌려 훼손하고 그대로 반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건 멋진 일이다. 도서관이 공중도덕 없는 이를 비난하고 개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전시를 해 유머를 섞여 알렸다는 게 멋스럽다. 이 글은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였다. 이건 작지만 멋진 전시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작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48083?sid=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