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결혼한 이모(31)씨는 연애 시절부터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자친구 집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결혼을 약속하고부터 신혼집 보증금을 모았는데, 만날 때마다 쓰는 외식비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고, 영화관보다 넷플릭스를 애용했다. 집 밖 데이트는 돈이 덜 드는 등산을 함께 했다"며 "덕분에 착실히 돈을 모아 전셋집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의 ‘연애 불황’이 심화하고 있다. 팍팍한 사정 속에 연애를 할 경제적 여유를 잃은 청년이 데이트와 외부 사교 활동을 줄이면서다. 최근 조사를 보면 청년에게 연애는 사치재로 전락했다. 1일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Z세대(1996~2009년생)는 ‘삶에서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 2위로 ‘연인·애인’(24.5%)을 꼽았다. 전 연령대에서 3위 안에 ‘연인·애인’이 있는 연령대는 Z세대가 유일했다. 교육·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 중인 Z세대가 연애를 더는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애를 하더라도 '짠물' 데이트가 일상화했다. 물가는 오르고, 벌이는 팍팍한 현실에서다. 지난해 20·30대 미혼 남녀가 지출한 데이트 1회당 비용은 평균 7만4700원으로, 2022년(7만9600원)보다 오히려 감소했다(결혼정보회사 가연, 500명 대상 설문). 최근 20대 이하의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1년 전보다 9%(8월 초순 기준) 줄었는데, 30대(-0.3%)·40대(-1.4%)보다 급격하게 지출을 줄였다(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식사·커피·영화·여행·선물 등 가격이 모두 오르는 상황에 청년 세대는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19를 겪으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청년도 전보다 많다. 평소 사교 활동보다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 데이트 코스로 꼽히는 영화관의 매출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전국 영화관 매출액은 1조2614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3분의 2 수준이다. 관객 수도 1억명 이상 감소했다.
주점이나 숙박 같은 다른 데이트 코스 업종도 문을 닫은 곳이 많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간이주점 사업자는 2019년 대비 37%(6월 기준) 줄며 100대 생활업종 중 가장 큰 감소율을 기록했다. 호프주점 사업자는 31%, 모텔 사업자도 15% 감소했다. 연인들로 붐비던 주요 대학가에선 공실이 수두룩하다.
연애시장이 침체한 것과 달리 결혼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역설적인 현상이다. 연애라는 이른바 ‘빌드업’ 과정은 최대한 줄이고, 결혼으로 빠르게 ‘골인’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 통계에서 결혼상담소 사업자는 2019년 대비 21% 증가했다. 매출도 오름세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지난해 매출은 404억원으로 전년 대비 6% 성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보다 비혼주의자가 늘었다지만, 최근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고객은 전보다 더 확실하고 적극적인 결혼 의지를 갖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코로나19 이후 미뤘던 결혼에 나서는 사람은 전문 업체를 통해 재력·직업·학력 등을 검증하고 결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문의가 계속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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