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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男, 혼자 죽는다 -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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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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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는 홀로 죽는가

6년 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릴 때 몇 번 뵌 적 있던 친척의 사망 소식이었다. 서둘러 찾은 장례식장에는 장례식 특유의 부산스러움 대신 착 가라앉은 공기만이 떠돌았다. 고인의 아내도 자식도 없었다. 먼 친척 몇 명이 장례식장에 와줬지만 대부분 예의상 왔을 뿐, 고인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아니었다. 나의 외할머니, 즉 그의 누나조차 최근 몇 년간 동생과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장례식장엔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외할머니의 남동생인 그는 특유의 처진 눈꼬리로 사람 좋게 웃는 분이었다. 내 작은 손에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꼭 쥐여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 넷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을 자주 찾았다. 그의 마지막이 이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여자보다 외롭게 죽는 남자

팀원 한 명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이 얘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모두 "왜?"라고 물었다. 단란했던 여섯 식구는 가장의 장례식에 오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사업을 하며 쌓아왔을 인맥도 한낱 모래알 같았다.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왜 죽기 직전까지 누나에게조차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을까. "대체 그 남자는 왜 혼자 남겨졌지?" 이 작은 의문이 우리를 무연고(無緣故) 사망자에 관한 취재로 이끌었다.

무연고 사망자 공고. 신원미상이거나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은 사망자들은 이 공고에 포함돼 각 구청 홈페이지에 올라간다. 서울에서만 한 해에 280여 명의 무연사가 발생한다. 2010년 273명, 2011년 301명, 2012년 282명이었다. 공고문은 한 달 동안만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종종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기도 한다. 우리는 2012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의 무연고 사망자들을 추렸다. 총 83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자 목록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숫자. 83명 중 남자는 77명, 여자는 6명이었다. 77 대 6. 너무도 확연한 차이. 우리의 의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왜 남자가 더 많지?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취재한 83명 중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무직인 사람이 많았다. 일자리가 있는 경우에도 공공근로거나 일용직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의 가장 가난한 공간에 살았다. 취재를 하려고 우리가 자주 찾아간 곳은 쪽방이나 고시원이었다. 평범한 동네인가 싶다가도 갑자기 허름한 곳이 나타났다. 강남 주소지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3층 주택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쪽방이 나왔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만이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무연사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무연사할 확률이 비교적 높은 독거노인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2011년 서울시 독거노인 중 71%가 여성이었다. 저소득 독거노인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3배가량 높다. 이 수치대로라면 무연사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그러나 77명의 남자와 6명의 여자라는 뚜렷한 차이. 현실은 달랐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무연사할까. 똑같이 가난한데도 왜 여성과 달리 남성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롭게 죽는 걸까. 2013년 봄,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아주 사소한 실마리

무연고 사망자 83명 중 쪽방촌에 머문 이는 16명, 고시원에서 살던 사람은 8명, 여관에서 장기 투숙한 사람은 3명, 주택 단칸방이나 쪽방에서 살던 이는 22명, 아파트에서 죽은 이는 5명 등이었다. 그곳은 그들이 마지막 생을 보낸 장소고, 꽤 오랜 거주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옆방 사람도, 집주인도 그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가끔 동네 오다가다 마주친 게 다예요. 교회 다니시고, 약주 하시고." 김권호 씨의 옆집 사람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다. "사촌 여동생한테 얹혀살면서 같이 옷가게를 했어요." 마지막 거주지에서 이진수 씨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단서도 딱 여기까지였다. "딸이 있다고 했나?" 강영호 씨의 옆방 남자가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지, 아들!"이라며 정정했다. 기억은 엇갈리기도 했다.

작은 실마리로 취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다녔다는 언급 하나로 시작된 취재도 많았다. 이금순 씨의 경우에는 성당에서 온 우편물만 보고 무작정 성당을 찾아갔고, 오민규 씨에 대해서는 "폐지 줍는 일을 했지"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온 동네 폐지 수집상을 찾아 헤맸다. "택시 회사에서 일했어요." 최명식 씨처럼, 직장을 알게 된 건 꽤 고급 정보에 속했다. 마지막 주소지에서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면 공고문에 적힌 등록기준지에 가보기도 했다. 취재는 한 번에 끝나는 법이 없었다.

한 곳을 여러 번 찾기도 했다. 이순모 씨에 대해서는 첫 취재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아, 맞다. 경로당에서 일했던 거 같던데"라는 말을 들었다. 조승만 씨의 경우 네 번째 찾아갔을 때 비로소 봉제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김민숙 씨의 행적을 찾아 세 번이나 요양원을 방문했지만 원장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시도로 원장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이렇게 확보한 작은 단서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강남구부터 은평구까지, 김포공항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서울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늘어나는 교통비에 비례해 무연고 사망자의 모습이 하나하나 완성돼 갔다. 그들의 삶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했다. 그들은 가족이 없어서, 가족과 연락하지 못해 혼자였다. 다른 관계를 찾지 못하며 더욱 외로워졌다.

77명의 남자와 6명의 여자.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똑같이 무연사했더라도 여자는 좀 덜 외롭게 죽었다. 김민숙 씨는 요양원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냈다. 교회에서는 그녀의 장례를 치러주려고 했다. 이금순 씨도 생전에 가족처럼 지내던 간병인이 그녀의 유품을 정리해줬다. 가족이 없어서 결국 무연고 사망자 명단에 올랐지만 적어도 그녀들의 마지막은 외롭진 않았다.

그리고 7명의 남자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자. 그들이 외롭게 죽어간 이유는 분명 있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대표할 7명의 사례를 글로 풀기로 했다.

중략

 

 

동자동 쪽방촌의 이인택(55) 씨는 이곳에 오기 전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는다. "내가 이러고 사니까. 그 사람들은 잘나가고 빵빵하잖아. 나처럼 이런 데 사는 사람과 같겠어?" 설문조사 결과도 이인택 씨와 마찬가지였다. 쪽방촌 남자 41명 중 27명이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11명은 '금전적 이유'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고, 5명은 '체면 때문에'라고 했다. '생활환경이 달라져서'는 4명, '친한 사람이 없다'가 3명, '상대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가 2명이었다(기타 2명).

사회가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남자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 남에게 의존하는 남자를 무능력하다고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남자는 도움을 청하는 일에도 익숙하지가 않다. 경제력을 잃은 남자는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주위 사람들과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이들은 체면을 지키려고 가면을 쓴다. 고양시 무허가촌의 장동화(60) 씨는 "동네 사람들과 깊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대부분 왕년에 잘나갔다는 얘기만 한다"고 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백창환 씨는 과거 휴대전화 관련 사업을 크게 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생인 우리에게 "원하면 취업시켜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이웃 주민들은 "허풍이니 믿지 말라"고 귀띔했다. 우리는 백창환 씨에게서 서울대 출신 김근수 씨를 떠올렸다.

"술 마실 때만 친구"

술은 무연사 남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근성 씨와 박성종 씨는 술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반면 우리가 취재한 무연사 여자 중에는 술에 의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노숙인재활센터인 서울시립 비전트레이닝센터 사회복지사 김병기 씨는 "남녀 성향의 차이도 있는 거 같다"고 했다. 여자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친구를 만나 수다로 풀지만, 남자는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사람을 만나지 않다보니 분을 삭이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무연사한 배형구 씨는 주로 방 안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배형구 씨와 같은 건물에 살았던 이웃은 "술을 사러 갈 때 빼고는 잘 안 나왔다. 그래서 이웃 주민과 친분이 없다. 정부에서 나오는 돈은 방세와 술값으로 다 지출했다"고 회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쪽방촌 쉼터 사회복지사는 "쪽방촌 주민들끼리 친해 보인다"는 우리의 말에 "대부분 술 마실 때만 친구가 되는 사이"라고 답했다. 이 쉼터의 또 다른 복지사도 "같이 술 먹는 사이지만, 상대가 죽어도 딱히 안타까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돈의동에서 설문지를 돌리다 만난 임순복(83) 할머니는 고아라서 가족은 없었지만, 동네 할머니들과 슈퍼마켓 앞에서 매일 모여 담소를 나눈다. 바이오해저드 김석훈 실장은 "사건 현장에 가면 남자 비율이 80%가 넘는다. 할머니들은 혼자 살아도 옆집 할머니랑 친하니까 고독사하지는 않는데, 남자는 동네에서 조용히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국립의료원 사회복지사 이승민 씨는 "소외계층을 상담할 때 종교나 지역모임 등 사회 네트워크에 참여하느냐고 묻는데, 남성은 집에만 있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여성은 지역민과 잘 지내는 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난 83명의 무연고 사망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가족과 연락이 끊겨도 교회, 이웃 등과 관계를 맺었지만, 남성은 그러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남성과 달리 무연사한 여성은 힘든 처지를 숨기지 않았다. 무연사한 전금자 씨는 평소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했고, 주변 사람들은 전금자 씨가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전금자 씨를 취재하러 갔다가 만난 최명순(84) 할머니도 독거노인이었다.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내일 새벽 5시에 병원에 가야 한다"며 약을 먹었다. 차도 없이 이른 새벽에 혼자 갈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니 "아들이 와서 데려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모두 지방에 살아서 혼자 살지만 자주 통화하고 만나며 지낸다. 복지단체인 효도본부에서 봉사도 하고, 교회를 다니며 주변 사람들과 교류한다.

서울대 출신 김근수 씨와 20여 년간 함께 산 이문자 할머니도 경제적 형편이 김근수 씨와 마찬가지로 어렵지만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고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복지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자주 집을 비웠다. 김근수 씨와 달리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친동생과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여성도 가난했지만, 무연(無緣)이나 고독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지 지탄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경제력을 잃었다고 해서 가족이 떠나거나, 거짓으로 관계를 만들거나, 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무연고자로 만드는 남자

https://v.daum.net/v/20131125153335048

 

2013년 옛날기사지만 왜 남성 고독사가 여성에 비해 5배가 많은지를 잘 풀어낸 좋은 기사라 들고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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