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전국시대에 들어서자
안 그래도 불안하던 일본의 중앙집권력과 행정력은 소멸해 버리고 만다
왕의 권위 자체는 이미 허수아비 꼭두각시로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였으나
피에 굶주린 사무라이들이 왕실 소유의 사원, 신사, 저택을 잿더미로 만들고
영지마저 막부가 보호비 명목으로 뺏어서 잡수니
황제 대접은 커녕 당장 오늘 처먹을 밥이나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덴노 중 하나인 고나라 일왕
참고로 당시의 기록은 이러이러하다
- 103대 왕은 죽은 뒤 왕실에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름.
- 그래서 그 시체를 창고에 거진 몇 달이나 처박아 뒀는데, 보다 못한 귀족이 낸 기부금으로 겨우 땅에 묻어줌.
- 그의 장남 104대 덴노 고카시와바라(後柏原)는 즉위는 했는데 즉위식을 못 올림.
- 막부한테 즉위식에 쓸 돈 좀 달라고 부탁했지만 씹힘. 그로부터 22년 후에야 한 사찰의 도움으로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었음.
- 105대 덴노 고나라(後奈良)가 즉위하자 왕실의 빈곤함이 한계치를 찍음. 저 위에 있는 부처님 같은 목상이 고나라 일왕
- 고나라는 자금 마련을 위해 아예 자기 친필 싸인을 팔았기 때문에 민간에서 그의 글씨를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함.
- 싸인만 팔았던 게 아니라 커미션도 받았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무사들한테 팔았는데, 그게 유물로도 남아있을 정도.
- 부업으로는 직접 붓이나 젓가락을 만드는 수공예 사업에 뛰어들었다. 왕도 나무깎는 장인의 나라 ㄷㄷ
- 고나라는 일본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짱돌을 맞은' 천황이다. 그것도 동네 잼민이들한테.
- 고나라가 죽고 나서도 궁에 도둑도 아니고 도적떼가 쳐들어와서 약탈해가는 일도 있었다고 함.
이렇게 차라리 폐위가 더 낫지 않을까 싶던 일왕의 신세는
나중에 전국시대 거물 영주 오다노부나가에게 매년 5천석,
그리고 더 나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매년 3만석의 기부를 약속 받게 되면서
드디어 팔자 피게 된다
참고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에서 나는 쌀 생산량은 자기 혼자서 대충 250만석이었다고 하니
왕에게는 정말 눈꼽만큼 떼서 던져준 셈이지만 이것마저도 감지덕지 받아먹어서 왕실 살림이 확 핀거 보면
당시 거물급 영주의 재력과 왕의 재산을 비교해보면 힘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안습이었던 왕실은 그 후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드디어 막부 세력에 피의 복수를 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