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의 시대가 된 메이저리그…야구 종주국 미국 자존심에 생채기도
미 드림팀, 작년 WBC에서 오타니의 일본에 무릎 꿇어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50홈런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1871년에 시작해 154년이 흐르는 동안 32명이 등장했고, 50번이 만들어졌다.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 이전, 50홈런을 넘긴 선수 중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한 이는 윌리 메이스(1955년)와 알렉스 로드리게스(1998년)의 24개였다. 50도루는 그보다 훨씬 많이 나와 지금껏 176명이 397번을 만들었다. 오타니 이전, 50도루를 넘긴 선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날린 이는 지난해 대기록을 세운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의 41개였다.
미국이 내세우는 최고의 스타 저지, 오타니 광고 수익의 6% 불과
파워가 좋은 선수는 발이 느리다. 발이 빠르면 파워가 떨어진다. 체격은 파워와 비례하고, 주력과 반비례하는 것이 야구의 상식이다. 가끔씩 이런 상식을 파괴하는,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가진 타자들이 등장한다. 오타니 이전 5명이 40홈런과 40도루를 한 시즌에 해냈다. 하지만 오타니는 '40-40'을 열한 번이나 경신해 '50-50'을 만들었다. 오타니의 올 시즌이 충격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한 이유다.
오타니의 출생 국가인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현지에서의 반응도 엄청나다.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오타니의 50-50을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과 비교했다. 야구계에서 오타니의 50-50은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 것만큼이나 경이로운 일대 사건이다.
2022년 애런 저지가 날린 62호 홈런공은 경매를 통해 150만 달러에 팔렸다. 반면 오타니의 50호 홈런공은 800만 달러도 넘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야구 경매품 역대 최고액인 호너스 와그너 카드의 725만 달러를 넘어선다(와그너 카드는 1910년에 담배회사가 제작했는데,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와그너가 전량 폐기를 요구하면서 몇 장 남지 않게 됐다).
하지만 오타니를 바라보는 이들 중에는 다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가장 먼저 데이빗 오티스(전 보스턴 레드삭스)가 총대를 멨다. 오티스는 오타니의 MVP 수상이 유력해지자 오타니를 MLB의 '귀여운 소녀'(pretty girl)라고 칭하며, 자신은 지명타자라서 MVP가 되지 못했는데 오타니는 MLB가 아끼는 선수여서 상을 받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동안 지명타자들은 수비를 하지 않는 '반쪽짜리'라는 인식 때문에 MVP가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오타니는 그 반쪽(공격)을 너무나 완벽히 해내, 수비 기여도가 있는 내셔널리그의 모든 선수를 승리기여도(WAR)에서 압도하고 있다. 반면 MVP 수상에 실패한 시즌의 오티스는 오타니만큼 WAR이 압도적이지 않았다.
동양인인 오타니가 최고의 선수로 등극하면서 MLB 무대를 완전 평정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메이저리그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최고의 선수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홈런의 선구자 베이브 루스, 56경기 연속 안타의 조 디마지오,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최고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 베이브 루스를 넘어선 홈런왕 행크 애런, 1990년대 슈퍼스타 켄 그리피 주니어 등 당대 최고의 선수 또는 최고의 인기 선수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선수였다. 물론 사회공헌의 상징 로베르토 클레멘테(푸에르토리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도미니카공화국), 역대 최고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파나마), 마지막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미겔 카브레라(베네수엘라), 통산 700홈런을 돌파한 앨버트 푸홀스(도미니카) 등 미국 국적이 아닌 스타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범아메리카권인 중남미 선수들이었고, 또 이들이 명성을 떨치던 당대에도 최고 인기 선수는 미국 선수의 차지였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는 '오타니의 시대'로 규정될 전망이다. 오타니는 10년 7억 달러라는 전무후무한 계약을 통해 최고 연봉 선수가 됐고, 광고와 스폰서로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야구의 마이클 조던'이 됐으며, 실력으로도 최고의 선수가 됐다. 미국이 최고의 선수로 내세우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는 62홈런을 날린 2022년에 오타니를 제치고 MVP가 된 적이 있지만, 타자 대 타자로 맞붙은 올해는 화제성에서 오타니에게 확연히 밀리고 있다. 저지의 올 한 해 광고 수익은 오타니의 6% 수준인 600만 달러가 될 전망이다.
시즌 중에 열리는 올림픽에 선수들을 내보낼 수 없는 메이저리그는 월드컵 축구와 맞먹을 세계적인 야구대회를 위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2006년에 만들었다. 하지만 1회(2006)와 2회 대회(2009) 우승을 일본에 내줬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은 이후 최고의 정예선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2017년 4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의 오타니' 김도영도 국내서 40-40 도전
지난해 3월에 있었던 5회 대회(코로나로 인해 2021년에서 2023년으로 연기)에서 미국은 역대 최고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회 연속 우승으로 세계 최강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의 '야구 드림팀'은 오타니에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직접 선수 섭외에 나서는 등 우승에 열정을 불태웠던 오타니는 마무리 투수로 나서 미국을 대표하는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고, 일본의 우승을 확정했다. 오타니가 있는 한, 이제 미국은 다음 대회인 2026년 WBC와 처음으로 메이저리거들이 나서게 될 2028년 LA올림픽에서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국적을 지우고 본다면, 오타니는 야구의 혁신, 야구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존재로 평가된다.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타자를 혼자 해내고, 최고의 슬러거와 최고의 대도를 혼자 해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오타니가 신세계를 열어젖힌 후 전 세계의 어린 선수들이 투타겸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미국의 일부 불편한 시선과 달리 한국의 야구팬들은 오타니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걸 떠나, 야구가 특정 선수에 의해 완성되는 모습이 경이롭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50-50 못지않게 KBO리그 최초의 40-40에 도전하고 있는 김도영(20·KIA 타이거즈)의 존재 또한 '김도영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면 어떨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오타니' 김도영에 대한 기대감도 동반 상승하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바로 '60-60'이다. 오타니가 올 시즌 60-60을 하려면 남은 6경기에서 홈런 7개와 도루 5개를 해야 한다. 이에 올해는 '55-55'가 현실적인 마지막 목표일 수 있다. '재활 중인 투수' 오타니는 이렇게 타자에만 전념한 올해 메이저리그를 발칵 뒤집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투수로도 돌아오면서 투타겸업이 만들어낼 새로운 기록에 나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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