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살육은 생체실험과 의술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끔찍한 실험도 자행됐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가장 치명적인 급소를 찾아내고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신체 가죽을 벗기거나 산 채로 고통을 느끼며 끔찍한 죽음을 맞게 하는 행위들이 빈번했다.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생체실험은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내과 의사인 요제프 멩겔레(1911~1979)의 어린아이와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마루타'로 불린 이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광범위한 생체실험이 있다.
우생학을 신봉했던 요제프는 금발과 푸른 눈의 아리아인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으며 어린 아이 눈에 화학물질을 삽입하거나 쌍둥이에게 세균이나 약물 투입, 해부 등을 하는 끔찍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 실험으로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우생학은 세계대전 당시 동맹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잔혹한 실험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제는 교토제국대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이시이 시로(1892~1959)가 세운 731부대를 통해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은 물론 일부 연합국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여 세균, 약물, 가혹한 환경에서 인체 실험 등을 수행해 수천 명을 희생시켰다.
동물의 혈액을 인간에게 주입하거나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루타에게 주사하기도 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인간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사망할 때까지 돌리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 이상이 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1932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공중위생국과 터스키기연구소가 흑인 소작농부 600명을 대상으로 자행한 비밀 생체 실험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희대의 폭력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 흑인들이 정부와 보건당국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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