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역사는 반도체의 역사로 불린다. 인텔은 CPU가 주력제품인데, 예전엔 D램 같은 메모리반도체도 만들었다. 1970년대까진 세계 1위였다. 일본업체들이 '저가공세'로 시장을 장악하게 됐고 결국 1980년대 중반에 철수하게 됐다.
인텔의 전성기는 1990년대 시작된다.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이 본격화된 시점과 맞물린다. 1990년대 중반 팬티엄이라고 불리는 586프로세서로 AMD와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 인텔은 2000년대 들어 '코어'가 붙은 노트북 프로세서를 히트시켰다.
2005년엔 마케팅 전문가 폴 오텔리니 대표가 취임하면서 최전성기가 시작된다. 8년간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놨다. 경쟁사 AMD가 무리한 사업확장을 꾀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시기와 겹친다. 물론 오텔리니에게도 오점이 몇 가지 있다. 모바일 CPU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을 영국의 ARM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퀄컴 등 반도체 업체들에 완전히 내줬다.
반도체 제국 인텔의 정체기는 오텔리니 사임한 2013년께 시작됐다. 후임 CEO는 브라이언 크로자닉이었는데, 이 사람에겐 '인텔을 망쳤다'는 오명이 따라붙는다. 재무 출신으로 엔지니어들에게 원가절감, 단기 성과를 요구했고 2016년엔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 했다. 이밖에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주식 매도 논란,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불거졌다. 2018년 밥 스완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재무통 CEO들 '원가절감'에 집착...기술개발 뒷전
밥 스완은 재무전문가 출신 CEO다. 역시 기술개발보다는 원가절감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 때부터 전임 CEO의 '소극적인 기술개발 투자'의 부정적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첨단 공정 경쟁에서 대만 TSMC, 삼성전자에 밀리기 시작한다.
2015년 나왔어야하는 인텔의 10nm 공정 제품은 계속 지연됐다. 한 세대 전인 '14nm' 공정을 고수하면서 '사골국물', '14nm 방망이 깎는 노인'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된다. 이런 최신 공정 지연은 지금 인텔의 가장 큰 리스크로 불리는 '고객사 이탈'을 초래했다.
애플이 'M1'이라는 자체 프로세서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구글 MS 아마존 같은 고객사들이 모두 '자체 반도체 개발'을 선언했다. 인텔이 구식 CPU를 고수하니까 자사 제품 성능도 떨어지게되고, 차라리 직접 개발하겠다고 직접 나선 것이다.
"MIT 박사가 왜 하버드 MBA(경영학 석사) 밑에서 일해야하나"
인텔이 단기 성과를 따지던 그 시기에 경쟁사 AMD는 변신을 거듭했다. AMD는 쇼클리, 페어차일드에서 일했던 제리 샌더스가 1969년 창립했다. 인텔과 CPU, GPU, AI가속기 등 모든 시장에서 경쟁하는 관계다. 과거엔 제품 성능은 약간 떨어지지만 싼 가격으로 버텨왔다. 2000년대 애슬론으로 살아났다가 2010년대 초반에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반등의 계기가 있었다. 2012년 대만계 미국인으로 MIT 박사 출신인 리사 수가 AMD에 합류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14년 CEO가 된 리사 수는 '가성비'를 앞세워 플레이스테이션 등에 납품한다. 수 CEO는 “MIT 박사(엔지니어)가 하버드 MBA(경영학 석사) 밑에서 일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AMD에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기술 경영에 고삐를 조였다. 재무통 CEO 밑에서 엔지니어들이 역량을 못 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10년 전 한 자릿수였던 AMD의 서버용 CPU 점유율은 지난 1분기 24%로 뛰었다. 인텔 점유율은 그만큼 떨어졌다.
인텔이 ‘싸구려 CPU 기업’이라고 얕잡아본 AMD는 계속 성장 중이다. 시가총액은 2144억4000만달러로 인텔의 2배를 넘는다. 2분기 순이익은 2억6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81% 늘었다. 반도체 기업의 승부처인 AI 가속기(HBM과 GPU를 패키징해 만드는 AI서버 전용 반도체 패키지) 'MI300X'를 앞세워 엔비디아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AMD는 올해 AI 가속기 매출 전망치는 기존 40억달러에서 45억달러(약 6조원)로 상향조정됐다.
한국경제 황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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